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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명'. 작년 한해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 수다. 사고 발생 때마다 정부와 기업은 "재발 방지 위해 총력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만, '산재공화국'에 머물고 있는 게 우리나라 건설업의 현 주소다.
그간 정부는 현장 근로자 안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제정·시행했다. 기업은 안전관리비용 확대하고, 현장 안전관리자 수도 늘렸다.
그러나 현장 체감 온도는 '안전 대책' 시행 전과 변한 게 없다. 일각에선 법 시행과 기업 안전 대책 확대로 사망사고 건수 '줄었다'고 평가하지만, 이틀에 한 명 꼴로 숨지는 건설현장이 과연 안전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
건설현장을 빗대어 표현하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죽음의 일터'다. 직업소개소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사고 당한 동료를 본 적 있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었다"고 고민을 털어 놨다.
3년 전, 건설현장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스무살 청년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달라"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화면과 상태메시지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문구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달에만 발생한 건설현장 근로자 사망자 수는 총 4명이다. "재발 방지 위해 최선 다하겠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외치던 GS·롯데·대우건설 시공현장에서 발생헀다.
특히 대우건설은 지난 5일 울산 북항 터미널 공사현장 사고 발생 후, 4일 만에 또 한 명의 근로자(경기 시흥 대우건설 주상복합 신축공사 현장)가 숨졌다. 불과 9일 사이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틀에 한 명'이라는 냉혹한 현실은 여전하다.
반복되는 사망사고 줄이기 위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올해로 시행 3년을 맞았다. 법 제정 당시 업계는 "건설사 다 죽는다.", "책임이 과하다"는 등의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마치 법 시행되지 않더라도 모든 현장이 안전할 것처럼 포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은 △끼임 △추락 등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매일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건설사들은 '숙제' 검사를 받듯 사과문을 내고 고개만 숙일 뿐이다.
일각에선 사고 발생 기업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망사고 발생 기업은 수차례 동일한 사고 전력이 있음에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처분을 받아서다.
그렇다면 법의 처벌 수위를 높이면 상황이 달라질까? 단정하긴 어렵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잇따른 건설현장 인명사고와 관련해 '건설업 면허 취소' '공공입찰 제한'까지 언급하며 고강도 대책을 주문했다. 건설업 면허 취소란 기업이 사업자격을 잃고 영업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후에도 건설현장의 사고는 반복됐고, 건설사는 또 한 번의 사과문을 작성했을 뿐이다.
다수 전문가는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공사기간 단축 압박'을 지적한다. 기업이 최대한 빨리 준공해야 수익을 얻는 구조 탓에 현장에서는 늘 "빨리, 빨리"가 반복되고, 이 조급함이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사고를 막기 위해 현장의 '시공 속도'에도 기준을 두는 건 어떨까. 고속도로에서 차량 속도를 100km/h로 제한하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과속 단속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속카메라가 설치된 구간에서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모두가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건설현장의 안전은 법의 처벌 수위만으로는 담보되지 않는다. 기업의 구조적 관행, 특히 '빨리빨리' 문화와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속도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빠른 준공은 더 이상 성과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실패로 기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