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익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출처=한국사회투자]](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9152_696218_4217.jpeg)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특유의 실행력 덕분에 우리나라의 창업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창업에 가장 뛰어난 민족을 꼽으라면 단연코 유대인과 중국인일 것이다. 이 두 민족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국가에 진출하여 각종 창업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두 민족의 경제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특히 이스라엘은 선진국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중국은 무역과 실물경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의 성취는 GDP 대비 교육과 R&D 분야 예산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도 설명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래동안 이어져 내려온 독특한 동업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몇 년 전 북미에서 성공한 중국인 연쇄 창업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한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동업을 통해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Exit을 경험한 뒤, 다시 새로운 동업을 막 시작한 상황이었다. 몇 차례 만남을 거듭하며 친분이 쌓인 후, 필자가 그의 비결을 묻자 그는 금고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 순간 필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은 다름 아닌 동업자들 간에 작성된 일종의 “주주간 계약서”였던 것이다. 그 속에는 동업의 목적과 업무 분담, 수익 분할은 물론 출퇴근 규정과 가족 관리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항목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와 친지들이 자녀가 태어나면 훗날 창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종자돈을 모아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동업을 시작할 때에는 대부분 변호사를 참여시켜, 요즘으로 말하면 투자계약서나 M&A 계약서와 유사한 수준의 상세한 계약을 체결한다고 한다. 한편 필자는 중국인들이 동업을 할 때는 단지 독주를 나눠 마시며 소위 “꽌시(關係)”만 형성되면 동포끼리 자연스럽게 협력한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 필자에게 책 한 권 분량에 달하는 계약서를 보여주었던 사례는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공동창업자 간 주주간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까지도 초기 창업자들이 작성한 주주간 계약서가 10장을 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수많은 청장년들이 유니콘을 꿈꾸며 창업에 뛰어들지만, 안타깝게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패한 창업자들을 만나 그 원인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금 부족을 호소한다. 그러나 왜 자금이 부족했는지를 깊이 파고들다 보면, 상당수는 결국 팀 관리와 관련된 문제가 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동창업자가 갈등으로 갈라서면 사업이 실패할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아무리 유능한 창업자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혼자 잘할 수는 없다. 기술력이 뛰어난 대표라면 재무가 약하거나 마케팅•영업에 소질이 부족할 수 있고, 숫자에 밝은 대표는 시장 개척이나 상품 개발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따라서 성공하는 기업들은 성장 초기에 C레벨 경영진을 주주로 영입하여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역량을 극대화한다. 바로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주주간 계약서다.
주주간계약서는 단순히 지분율과 조건을 정하는 서류에 그치지 않는다. 창업자들이 어떠한 미션과 비전으로 함께할 것인지, 어떤 역할과 책임을 맡을 것인지, 만약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을 미리 규정하는 일종의 ‘법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국내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창업 주주 간의 구두 합의나 간략한 메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믿어야지’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는 매우 중요한 리스크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해소여부는 투자의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투자 무산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까. 우선 계약서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항목들이 있다. 계약 목적, 지분의 배분과 베스팅 조건, 업무 역할과 책임, 근속 의무, 지분 매각의 제한, 그리고 문제 발생 시 퇴출 조건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계약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계약의 목적은 회사 운영에 관한 기본 원칙을 정의하고, 주주 간 분쟁 발생 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회사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고, 주주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은 주주의 회사 경영 참여에 관한 사항이다. 원칙적으로 창업자는 회사 경영에만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겸업 금지 조항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겸업 금지뿐 아니라, 동종 업종의 다른 사업체 지분을 취득하거나 관여하는 행위 역시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영 참여에 있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명확히 구분하여 규정해야 한다. 또한 주식의 매도 제한 조건과 의무적 양도 조건을 세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분쟁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지분은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이를 상세히 규정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공동창업자 간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공동창업자들이 지분을 사이좋게 균등 분할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어 3명이 4:3:4의 비율로 나누는 사례다. 언뜻 보기에 공평해 보일 수 있으나, 외부 투자자의 시각에서는 가장 취약한 주식 배분 방식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반드시 특별결의를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 형태로 구조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에서는 근속 연수에 따라 지분이 확정되는 ‘리버스 베스팅(reverse vesting)’ 제도가 널리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주주에게 우선 지분을 몰아주고, 특정 조건 충족 시 주식을 배분하거나 공동창업자가 이탈할 경우 남은 창업자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방식이 흔히 사용된다. 다만, 이면 합의 형태로 공동창업자 간 주식 양수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외부 투자자가 이를 용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주식 양도 시 법적으로 무효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며, 위반 시 제재하는 절차를 계약서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동창업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각 업무에 따른 주요 PI(Performance Indicator) 까지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현실은 CEO•CTO•CFO 등 직함만 존재하고, 실제 역할•상세 업무 리스트•KPI•평가 방법을 요청하면 대부분 부재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의사결정을 CEO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경영 의사결정의 성격에 맞추어 참여자를 사전에 정하고, 신규 사업 진출, 대규모 자금 조달, 사업부 매각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반드시 전원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순탄하게 성장하기보다는 매일매일 전쟁과도 같은 갈등과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자가 회사나 사업에 고의적으로 손실을 입히거나, 법적•윤리적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이를 규제하는 조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회사에 끼친 피해의 정도에 따라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하고, 주식을 무상 또는 액면가로 공동창업자에게 양도하도록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무단 퇴사나 경업 행위와 같은 경우에도 지분 양도 제한, 우선매수권과 같은 안전장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근속 의무와 조기 퇴출 조건 또한 필수적이다.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함께 창업했는데, 회사가 성장하기도 전에 공동창업자가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그 조직에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보통은 최소 근속연수를 명시한다. 이 경우 회사를 떠나는 주주의 지분을 남은 창업자가 우선적으로 인수하도록 하는 조건은 필수적이다. 반대로 회사에 해악을 끼친 경우라면 퇴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해당 지분은 남은 창업자들에게 무상으로 귀속되거나 액면가로 양도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 외에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사항은 많다. 다른 주주의 서면 동의 없는 주식 양도•매각•담보 제공 금지, 지적재산권 관리, 비밀유지 조항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계약 해지 조항, 법적 책임, 계약 변경, 권리와 의무의 양도 금지와 같은 조항 역시 필수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계약은 창업 이전에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늦어도 첫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 전에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절차는 창업자들이 워크숍을 통해 상세한 합의를 도출한 뒤, 법률 검토를 거쳐 정관과 계약서에 반영할 항목을 확정하는 것이다.
공동창업자 간 주주간계약서는 결코 창업팀의 협동과 신뢰를 헤치는 훼방꾼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신뢰를 공고히 함으로써 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서면 계약은 흐릿한 기억을 바로잡는 강력한 치료제이자,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든든한 면역제이다. 스타트업이 멋지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첫 번째 문서는 사업계획서뿐만 아니라 주주간계약서도 포함되어야 한다. 정교하게 짜인 계약은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를 지탱하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