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익 한국사회투자 대표. [출처=한국사회투자]](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70072_685626_5910.jpeg)
17세기 조선은 국가적 암흑기라 할 만큼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진왜란의 참혹한 피해로 경제 재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국은 북인, 서인, 남인으로 분열되어 끊임없는 정치적 대립과 당파 싸움에 휘말렸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병자호란 등 크고 작은 전쟁은 국가와 민생 모두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 시대 서구에서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일련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는 세계 최초로 주식을 발행하며 주식회사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암스테르담에는 VOC 주식 거래를 위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 이어 런던(1698년), 파리(1724년), 뉴욕(1792년)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각 국에 증권거래소 설립이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이 1878년 아시아 최초로 도쿄에 증권거래소를 세우며 자본시장 전쟁에 뛰어들었다.
한편 우리나라는 1953년,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나서야 뒤늦게 주식시장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은 매우 늦게 시작되었으며, 기업 및 경제 규모에 비해 아직도 선진국 자본시장으로 제대로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돈이 혈액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주식회사는 자본시장에서 활발히 돈이 공급되어야 건강히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고속성장을 하는 스타트업에게도 상장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는 본인의 사업을 다른 주인에게 비싸게 넘기고 큰 돈을 버는 엑싯(Exit) 을 꿈꾼다. 상장은 여러가지 엑싯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레드자켓'을 입고, 첫 상장 거래를 알리는 상장 타종의 순간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스타트업 대표들의 꿈인 거래소 상장의 과정과 그 여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몇 가지 상장 경로를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기술력으로 인정받아 상장하는 '기술특례상장' 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상장주식이 거래되는 장내시장과 비상장주식이 거래되는 장외시장으로 구분된다. 장내시장은 코스피(KOSPI), 코스닥(KOSDAQ), 코넥스(KONEX)로 나뉜다. 장외시장은 스타트업 전용 마켓인 KSM(KRX Startup Market)과 K-OTC(Korea Over-The-Counter) 가 대표적이다. 주식시장은 자금 조달의 창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상장을 통해 기업 인지도와 신뢰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매출 확대, 우수 인재 확보, 신규 사업기회 창출 등 다양한 기업 성장을 촉진한다.
이 가운데 벤처스타트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단연 코스닥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뛰어난 신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되었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에 이르는 경로는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매출액과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 성과를 위주로 평가받는 일반상장, 둘째, 탁월한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기술특례상장, 셋째, 빈 코스닥 상장사와 통합하는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상장, 넷째, 비상장기업 거래소인 코넥스를 통한 이전상장이 있다.
코스닥에 직상장하는 일반상장과 기술특례상장은 뒤에서 좀 더 상세히 다뤄보기로 하고 SPAC 상장과 코넥스 이전 상장을 먼저 간략히 살펴보자. SPAC상장은 일종의 M&A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닥 상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만든 제도로 미리 돈만 모아 놓은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를 먼저 상장시키고 요건에 부합하는 벤처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이다. 코넥스 이전상장은 코넥스의 우량 기업을 코스닥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여러 기준에 따라 5개의 이전 트랙이 존재한다.
기술력과 성장성이 뛰어난 유망 기업이 기술 및 사업모델 평가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바로 기술특례상장 제도이다. 이는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기반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 제도로, 해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 초기라 매출이 낮은 기술기업에게 매우 유리하다. 자기자본 10억 원 이상, 시가총액 90억 원만 갖추면, 전문 평가기관의 기술 평가를 통과할 경우 상장 자격이 주어진다.
기술특례상장은 평가 분야에 따라 혁신기술트랙, 사업모델트랙 두 가지 트랙으로 구분된다. 혁신기술트랙은 기업 기술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며, 전문 기술평가기관의 평가를 받아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다. 사업모델트랙은 사업모델의 경쟁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상장주관사(증권사)의 추천을 통해 심사를 신청한다. 2023년 12월부터는 기술성 평가를 복수의 기관에서 받을 필요 없이, 단일 기관의 심사만으로도 자격이 부여되는 등 제도가 한층 완화되었다. 현재 거래소가 인정하는 기술 전문 평가기관은 국책연구기관 18개를 포함하여 총 26개이다.
지면관계상 기술성장기업 평가에 대한 모든 항목을 일일히 살펴보긴 어렵지만, 기술 기업의 경우 18개의 세부 평가 항목, 사업모델 기업은 12개의 세부 평가 항목이 적용된다. 기술기반 기업은 기술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기술성'과 시장의 규모와 성장 가능성을 보는 '시장성'이 주된 평가 요소이다. 반면 사업모델 기업은 사업모델의 탁월함을 평가하는 '사업성'과, 경영진 및 기업 역량 수준을 평가하는 '자원 인프라'로 구분되어 평가가 진행된다.
상장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상장 준비 단계(약 1년 전), (2)상장예비심사 신청 및 결과 통보(신청 후 45일 이내), (3)증권신고서 제출(신청 후 4개월 이내), (4)신규 상장 완료. 이 과정 전체에는 약 4개월이 소요되며, 준비 단계까지 포함하면 기술특례상장을 위해 최소 1년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무제표 정비, 자본금 및 지배구조 개선, 최소 시가총액 달성을 위한 매출 및 법인세전순이익 확보 등 실질적인 요건까지 갖추려면 보통 두 회기년도 이상의 결산이 포함된 충분한 준비 기간이 요구된다.
한동안 일련의 사건으로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심사기준이 매우 엄격해져서 코넥스를 거쳐서 코스닥으로 신속이전하는 방법이 더 선호되기도 했다. 기업의 계속성에 대한 평가도 면제되고 상장심사기간도 대폭 단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넥스도 상장유지 비용이 높아지고, 상장주선인(증권사)의 입장에서는 이전상장이 직상장보다 수익성이 높지 않아서 국책 금융기관인 IBK기업은행을 제외한 민간 주관사는 그다지 선호를 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신속이전도 5개의 세부 트랙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타트업의 상장 전략은 기업의 기술력, 재무 성과, 그리고 자본시장의 변화라는 세 가지 축을 고려해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만약 기업의 재무성과가 꾸준히 우수하다면,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의 신속 이전 상장이 가장 실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의 경우에는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활용하여 직접 상장에 도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SPAC 을 통한 우회상장은 자본시장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으나, SPAC 운영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상장 신청 수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상장 경로 및 목표 일정의 조기 확정
- 지정감사와 K-IFRS 기준에 부합하는 감사보고서 및 재무제표의 사전 점검과 정리(상장 2년 전부터)
- 주관사(증권사의 전문성 및 규모 등 고려) 선정 및 계약 체결
- 매출과 영업이익의 지속적 관리 및 성과 개선
- 각종 인증, 특허, 수상 경력 등 기업 신뢰도 제고를 위한 사전 확보
- 기술평가 항목에 대한 사전 진단 및 준비
- 내부통제 체계와 각종 규정의 정비 및 고도화
- 기업지배구조(거버넌스)의 선진화 및 투명성 강화
새 정부는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핵심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주식시장 활성화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며, 주가 5,000 시대를 힘 있게 이끌고 있다. 특히 AI, 바이오, 친환경(ESG), 디지털 전환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글로벌 IPO, 해외 투자자 유치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모처럼 조성된 우호적인 환경은 스타트업에게 더 넓은 성장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다양한 혁신기술 스타트업들이 자본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