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 법률사무소메이데이 변호사·일본 와세다대학 방문학자 [출처=유재원 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메이데이 변호사·일본 와세다대학 방문학자 [출처=유재원 변호사]

일반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법률용어에는 제척(除斥), 기피(忌避), 회피(回避)가 있다. 그 재판 또는 수사 등을 수행하거나 담당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 법관 등은 공정하고 양심에 따른 법률판단을 위하여 (당연히) 제척되거나, 당사자가 기피를 신청하여 받아들여지거나, 스스로 회피한다.

어느 경우에도 그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최근 제정되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의 맥락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공익과 사익간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업무수행이 불가하다는 취지다. 공익적으로 행해지는 어떠한 행위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높다.

그런데 그 본래의 용어 취지와는 달리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노동현장에 있어서다. 본래, 노동의 경우에 제척이 되는 경우라면 사회부조(사회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장애인계층과 공공목적으로 배제되는 수형자 등의 경우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문제되는 것은 노동의 기피나 회피 풍조에 있다. 엄격하게 법률적으로 보자면, 회피는 스스로 자신이 그 노동을 피하는 것이고 기피는 (이해관계 있는) 누군가가 (누군가의) 노동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기는 하다. 결국 (회피라고 본다면) 노동을 스스로 (고의적으로)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겠고, (기피라고 본다면) 노동을 하지 않는 계층-계급화하여 노동을 부담하지 않게끔 하는 갖가지 행동들을 말한다.

산업혁명시대에 후자의 문제점은 이미 있었다. 이른바 유한계급(leisure-idle class·베블렌의 유한계급론 참조)들은 일생을 아무런 노동없이 자본의 결실만을 누리는 노동예외계층으로서 노동의 잉여를 하나의 호사(好事)로서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차차 산업혁명이 변화하여, 방임과 자율에서 벗어나서 (그들에게) 공적인 책임과 부담을 누리도록 제도화하자 이들 계층은 음지화하였거나 점차 족벌체제로서 일부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유한계급은 각국의 헌법과 우리나라헌법에서 정하는 노동에 관한 기조에 반하고 특히 무분별한 자본의 전이와 세습은 철저히 금지되며 조세-환원 등을 통하여 각종 사회적 부담을 의무적으로 내도록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이들의 경우 노동을 방임하거나 외면하는 것에 대하여 댓가를 치르게 할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으로서 사회후생총량적으로 별도의 사회적인 비용(보호, 부조)을 유발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노동의 기피-회피가 본래 나쁜 것으로 출발하지는 않았다(보이콧 사건). 산업혁명 당시 플랜트농업 등의 대량생산에 많은 농업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땀흘려 일했지만 지주계층과 관리자에게 잉여가 더 많이 지급되었다. 그들은 분노했고 노동을 기피했다.

이처럼 노동을 기피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처럼 노동법률용어에서 ‘보이콧’은 노동에 대한 의식적인 회피와 기피다. 영국인 보이콧Boycott은 아일랜드의 대지주 관리인으로 일했다. 혹독한 관리(이른바 마름짓)가 이어지자, 농민들이 보이콧을 비난햇고 보이콧의 일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사회전반에 걸쳐 농민들도, 하녀들도, 상인들도 보이콧과는 거래를 끊었다.

훗날 보이콧을 축출한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보이콧(배척, 거부, 불매)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른바 보이콧은 사회적으로 적절한 불매운동이거나 노동쟁의에서 쟁의행위의 일종으로 합법적으로 노동현장에서 벗어나는 운동이다( 소극적으로는 준법투쟁으로서 법에서 정하는 만큼만 딱 일하고, 법이 허여하는 휴가나 휴게를 모두 소진하는 방식까지도 보이콧에 포함된다).

그런데 이러한 보이콧으로 볼 수 없는 노동기피회피는 사회전반에 퍼지고 있다. 영국과 북유럽에서는 ‘노동 없이’ 사회적 부조(실업급여 등)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계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노동의욕도 없고 노동시장에 적합하지 않아 (유용하지 않은) 인적자원의 잉여(잔여)로 치부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전반의 (노동) 회피-기피 현상까지도 이어진다. 실제로 북유럽과 일본에서 발생하는 청년들의 노동 회피-기피는 그러한 사회 구성원들이 실제로 생계를 유지할 노동조차 하지 않는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이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공적인 지원이 발생하는 경우(실업급여 수급, 기초생활 수득, 기타 사회공공부조의 수혜)조차 있으니, 사회경제적 후생의 손실은 가히 명확한 수준이다.

노동기피-회피의 계층들이 다른 문제나 범죄까지 새로이 야기한다면 이것은 손실의 창조 경제(?)라고도 볼 만 하다. 본래 노동은 그 자체로 자유권을 가지고 사회권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겠으나, 노동을 회피, 기피하는 문제는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그 정도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이하에서는 기피로 용어를 일원화함).

시각을 달리해서 본다면, 사회규범의 최소한이자 중핵인 범죄관련 법규범(형벌)에 있어서 노동회피를 단죄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은 전세계 여러 나라가 마약과 도박 등에 대하여 형사적인 제재를 하면서까지 “건강한 노동문화, 유구한 사회전통을 해친다”라는 명목으로 처벌하는 바로 그 이유다(청나라 말기의 아편전쟁 당시 임칙서의 표문).

이처럼 도박이나 마약 등의 범죄는 노동의 가치재,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동기피의 풍조는 노동의 생산과 노동의 공급에 있어서 심각한 해를 끼쳤다는 점이 역사에 드러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10대부터 50대까지 넓게 퍼져있는 히키코모리계층(은둔형 외톨이, 노동기피계층)은 이미 150만명을 돌파하였다(2023년 내각부조사 당시 전일본 내 146만명 이상). 더욱 심각한 것은 가정을 온전히 유지하지 않거나 못하는 40대 이상 히키코모리도 65만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일본의 농림부 차관이 자행한 살인사건을 보듯이 그 문제는 심각하다(체코대사까지 지낸 고위공직자가 히키코모리 아들의 폭력을 감내하지 못하고 살인하게 된 사건). 이 사건 외에도 히키코모리계층은 아키하바라 트럭돌진사건, 도쿄지하철 방화사건 등등의 범죄 문제까지 이어지는 등으로 반사회적인 심각성(공통적으로 무직자였는데 그 범죄들로 인하여 관련 범죄 예방, 해소 비용도 상당하고 범죄피해자와 가족의 사회적 손실도 막대)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히키코모리 계층에 공적인 부조를 계속해주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소 5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노동은 기피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노동이 헌법상 의무라기보다는, 노동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서 생계의 유지와 사회활동의 기반생성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노동의 기피 문제는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숙제다.

노동기피의 현상은 종국적으로 노동기피의 사회구성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이는 그들에게 자생적으로 또는 타력적으로 사회 경제 체제에 편입하도록 독려할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사회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새벽종이 울리면 일터로 향했던 시대에서, 21세기형 선진 사회복지국가로 향하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와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과연 노동의 기피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사회는 진정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거나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인가. 노동의 기피, 보이콧의 변질, 노동기피계층(idle class)의 출현 등등에 대하여 시급히 고민해보아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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