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대기업 루코일의 로고가 지난 10월23일 소피아의 한 주유소에 걸려 있다. 불가리아 의회는 지난 7일, 미국의 러시아 석유 대기업 루코일 제재 이후 동부에 위치한 루코일의 정유 공장을 국가 통제 하에 두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출처=연합뉴스]](https://cdn.ebn.co.kr/news/photo/202511/1686138_704124_3155.jpg)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강화되면서 러시아 최대 민간 석유기업 루코일(Lukoil)의 해외 자산이 사실상 마비됐다. 이라크 정부는 최근 루코일과의 협력 중단을 공식화했고, 루코일은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며 계약 이행 불능을 통보했다.
이라크 석유부 대변인 압둘 사히브 바준 알하스나위는 CNN에 "루코일이 미국의 제재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졌다"며 "직원 급여 지급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루코일은 지난 10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제재 조치 이후 수백 명의 현지 직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루코일은 이라크 남부의 대형 유전인 '웨스트 쿠르나-2(West Qurna-2)'에서 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루 원유 생산량은 40만 배럴이 넘으며, 루코일의 전체 해외 자산 가치는 200억 달러(약 28조 원)에 달한다.
이라크 국영 석유마케팅기구(SOMO)는 루코일이 제재 대상에 오른 이후 원유 대금 지급을 중단했다. SOMO의 알리 니자르 알샤타리 국장은 "이라크 내 모든 석유기업은 미국 재무부나 유럽연합(EU)의 제재와 무관해야 한다"며 "SWIFT 국제결제망에서는 제재 대상 기업의 참여가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SOMO는 11월 루코일에 지급 예정이던 약 400만 배럴분의 원유 대금을 보류했으며 "합법적 지급 절차가 마련될 때까지 루코일의 대금은 동결 상태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루코일은 제재 회피를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오스트리아 소재 기업과의 거래가 미국 재무부 개입으로 무산된 데 이어, 스위스 석유 트레이딩사 건보르(Gunvor)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좌절됐다.
미 재무부는 지난주 X(옛 트위터)를 통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무의미한 살상을 멈추지 않는 한, 크렘린의 꼭두각시인 건보르는 절대 운영 라이선스를 부여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루코일인터내셔널은 카자흐스탄 텡기즈(Tengiz) 유전 지분 5%와 루마니아·불가리아 정유소, 스위스 트레이딩 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제재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부르가스(Burgas) 정유소를 임시 국유화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루코일이 소유한 핀란드의 주유소 체인 테보일(Teboil)도 제재 여파로 연료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핀란드 에너지 기업 네스테(Neste)는 루코일 제재 조치 이후 테보일로의 연료 공급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루코일의 글로벌 자산이 동시다발적으로 동결되며 국제 원유 거래망에서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며 "이라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주요 생산 거점이 모두 타격을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루코일은 CNN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으며, 향후 제재 완화 또는 자산 매각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의 강경한 입장과 국제결제망의 차단으로 단기간 내 정상 운영은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