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있는 현대 메가 사이트 배터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연행되고 있다. [출처=ATFAtlanta]
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있는 현대 메가 사이트 배터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연행되고 있다. [출처=ATFAtlanta]

미국 조지아주 남동부에 위치한 현대, LG 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 엔지니어 수백 명이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급습으로 구금되며 한미 경제 협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1일 ABC뉴스에 따르면, 이 사건은 “국토안보부 역사상 최대 규모 단일 현장 단속”으로 기록됐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이 외국인 투자 유치 전략과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현장에 있던 엔지니어 김모씨는 “완전히 무장한 요원들이 드론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며 “손목과 발목, 가슴에 족쇄를 채운 채 끌려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권리 고지나 통역도 없었고, 그저 통제된 공간에 갇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마치 영화 속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ICE는 이민법 위반 혐의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한 500여 명의 근로자를 체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단기 비즈니스(B-1) 또는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해 장비 설치 및 교육 임무를 수행하던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를 ‘불법 근로’로 간주했다.

구금된 노동자들은 열악한 시설에 수감돼 공포에 떨었다. 김씨는 “곰팡이 핀 매트리스와 악취 나는 물, 사생활이 없는 화장실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며 “경비원들이 아시아인을 조롱하며 북한 지도자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구금자 송환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외국인 근로자는 합법적 취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이민 단속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사건은 한국 내에서도 충격을 안겼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재류카드를 갖고 합법적으로 일하던 기술자들을 테러리스트처럼 다뤘다”며 “인권의 모델이라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소재 현대자동차그룹 Metaplant America 공장 전경. [출처=WJCL]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소재 현대자동차그룹 Metaplant America 공장 전경. [출처=WJCL]

현대차는 이번 사건으로 조지아 공장 개장을 최소 2~3개월 연기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일시적으로 모든 미국 출장과 현장 공사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 숙련 기술자 부족을 감안할 때, 한국 엔지니어들의 참여 없이는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비자 제도 개선과 노동자 안전 보장을 논의했다. 회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신라 금관 복제품을 전달하며 상징적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양국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김씨는 “지금도 왜 우리가 구금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사과도 설명도 없이 7일간 감금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약 200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ICE를 상대로 인권 침해 및 불법 체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 [출처=AP통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 [출처=AP통신]

한편 한국 외교부는 이번 사태를 “한미 동맹의 신뢰를 다시 확인한 계기”라고 평가하면서도, B-1 및 ESTA 범주 내 비즈니스 활동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한국 기술자를 위한 전용 비자 신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경제 동맹의 그늘’로 규정한다.

한 국제통상 전문가는 “트럼프의 제조업 부흥 구호 아래 외국인 기술자들이 이민 단속의 희생양이 됐다”며 “한미 경제 협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술 인력 이동에 대한 제도적 명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