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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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자산·매출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가 누증되는 '기업규모별 차등규제'가 주요국 가운데 한국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에 의뢰해 23일 발표한 'K성장 시리즈(8): 주요국의 기업규모별 규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은 기업의 자산이나 매출규모에 따라 규제를 누적적으로 강화하는 제도를 두지 않는 대신, 상장 여부 등 기업의 법적 형태나 지위, 공시·회계 등 행위유형에 따른 규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기업의 자산·매출·종업원 수 같은 정량 기준으로 의무를 누적시키는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기업 규제를 법령으로 명시하지 않으며, 상장회사 여부에 따라 공시·지배구조·외부감사 등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델라웨어·뉴욕 등 주(州) 회사법에서도 공개·비공개 회사 구분은 존재하지만, 공개회사를 다시 규모로 세분화해 규제를 늘리는 체계는 없다.

증권법과 사베인스-옥슬리법(SOX법) 역시 상장회사 대상의 내부통제·감사·공시 의무는 존재하지만, 이들을 자산 규모별로 나누지 않는다. 반독점 규제도 셔먼법·클레이튼법·연방거래위원회법 등을 통해 카르텔·남용·결합 행위를 중심으로 위법성을 판단하며, 기업 규모는 기준이 아니다.

영국 역시 Companies Act 2006을 통해 공개회사와 폐쇄회사를 나누되, 공개회사를 규모로 다시 나누는 차등규제는 없다. 상장회사의 지배구조 의무 강화도 ‘규모 기준’이 아닌 기업지배구조 코드(UK Corporate Governance Code, 2024)에 따른 자율규제 성격이다. 경쟁법·기업결합 규제도 기업규모와 무관하게 시장 왜곡 여부를 개별 심사한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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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상법(HGB)에서 소·중·대규모 구분을 두지만, 이는 재무제표 작성·감사 등 회계 목적에 한정된 기술적 기준이다. 지배구조·공정거래·기업행위 전반을 규모별로 나누는 제도는 없다. 공동결정제도에서 근로자 수 기준이 사용되지만 노동참여라는 사회정책 목적일 뿐, 한국처럼 규모를 규제 출발점으로 삼는 체계는 아니다.

일본도 자본금 5억엔 이상 또는 부채 200억엔 이상 기업을 '대회사'로 정의하지만, 대회사를 규모별로 다시 나눠 단계적 의무를 추가하는 방식은 없다. 금융상품거래법·독점금지법 역시 상장지위·시장행위 중심의 기능별 규율을 적용한다.

김영주 교수는 "영미권은 기업을 대기업·중견·중소로 나누어 규제 목적에 활용하지 않으며, 규모별 누적의무 부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국은 기업집단을 규모로 지정하고 자산구간마다 의무가 누적되는 구조를 상법·공정거래법 등에 중복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분석에 의하면 한국은 상법·자본시장법·공정거래법·외부감사법 등에서 자산총액·매출액·종업원 수 중심으로 규제를 설계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새로운 의무가 단계적으로 누적되며, 총 12개 법률에 343개의 계단식 규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성장페널티(Growth Penalty)' 구조로 규정하고, 성장 과정에서 규제가 자동적으로 늘어나 기업의 성장 유인을 떨어뜨린다고 진단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과거 고성장기에는 기업규모별 정책이 경제력 집중 억제와 성장격차 해소를 위한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 같은 성장정체기에는 성장 유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4%(2024년), 시총 100대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은 50% 이상(2022년)인 상황에서 기업규모별 규제가 오히려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기업성장포럼을 통해 기업 규모 기준이 아닌 법적 지위·행위 중심 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관련 법 개정 아이디어를 조만간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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