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B777-300ER[출처= 대한항공]
대한항공 B777-300ER[출처=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공정거래위원회 시정조치를 무기 삼아 노골적으로 인천–괌 노선 독점을 노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규제 준수를 명분으로 공급을 늘려 경쟁 항공사를 압박하고 운항 중단까지 이끌어 냈다는 비판이다.

24일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9월과 10월 인천-괌 노선을 각각 181편, 162편 운항했다. 전년 대비 9월은 202%, 10월은 161.3% 늘어난 수치다.

이는 공정위가 지난 12월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당시 괌을 포함한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26개 노선에 대해 ‘2019년 대비 공급좌석 90% 이상 유지’라는 행태적 조치를 부과하면서다.

대한항공의 지난 2019년 인천–괌 공급석은 약 48만석이다. 올해 대한항공이 충족해야 할 공급석은 약 43만석으로 지난해 대비 무려 33.5%를 늘려야 한다.

문제는 공급 확대 시점이다. 올해 초부터 공급을 균등하게 늘릴 수 있었음에도 대한항공은 1~8월 공급석은 전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고 9월에 들어서야 갑작스럽게 공급을 확대했다. 공정위 시정조치와 상관없는 진에어, 에어서울도 증편과 재운항으로 인천-괌 노선의 공급을 확대했다.

이에 인천-괌 노선의 운임은 빠르게 붕괴됐다. 저비용항공사(LCC)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제주항공은 13년 만에 괌 노선을 철수, 티웨이항공 역시 내년 3월까지 운항 중단을 선언했다.

대한항공 정비 격납고 앞에서 보잉777-300ER 항공기 세척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출처=대한항공]
대한항공 정비 격납고 앞에서 보잉777-300ER 항공기 세척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출처=대한항공]

LCC는 중형기(B737·A321)를 운항하고 있어 좌석당 단가(CASK)가 상대적으로 높다. 운임 하락에 가장 취약한 구조다. 장거리 노선에서 중·대형기(B777)를 투입하는 대한항공은 CASK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공급 확대로 LCC의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실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두 회사 모두 수익성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한항공은 탑승률이 낮아도 버틸 재무 체력이 있지만, LCC는 운임 하락과 탑승률 저하를 견딜 수 없는 점도 유효했다. 결국 11월에는 대한항공, 진에어, 에어서울 등 한진그룹 항공사만이 인천-괌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공정위 조치를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이행할 의도였다면 1~12월 동안 고르게 공급을 늘리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상반기와 여름 성수기는 수익이 나는 구간으로 남겨두고 수요가 줄어드는 비수기 구간에만 공급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규제를 악용해 시장 구조를 흔들고 경쟁 LCC를 퇴출시키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에 따른 구조적 시정조치의 일환으로 괌 노선을 포함한 10개 노선 이전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괌 노선 이전을 희망하는 항공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결과적으로 한진그룹 항공사가 공정위 규제로 인해 인천-괌 노선을 독점하게 됐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규제 준수라는 명분 아래 공급이 비수기에 집중되며 괌 노선의 운임을 무너뜨렸고, 그 부담은 LCC가 대부분 떠안았다”며 “공정위 규제가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한진그룹 항공사의 노선 독과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사 공급은 통상 최소 반기 단위로 사전에 수립된다"며 "스케줄 편성 및 기재 운영 계획, 각 공항 운항시각의 확보 등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갑작스러운 공급 변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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