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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선을 돌파했다.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국내 정유·화학업계의 불확실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8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미국·유럽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란 핵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에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날 거래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배럴당 3.72달러 상승한 119.4달러에, 북해산 브렌트(Brent)유는 5.1달러 상승한 123.21달러에 마감했다. 중동산 두바이(Dubai)유는 전일대비 배럴당 16.35달러 상승한 125.1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러시아 석유 부문에 대한 제재 부과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배럴당 139.13달러까지 상승하며 2008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고 일반 무역을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 처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산 원유 공급 불안정성으로 인한 리스크카 커지면서 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중 하나로 글로벌 시장에 하루에 약 700만 배럴을 공급한다. 모하메드 사누시 바르킨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전 세계는 러시아를 대체할 충분한 원유생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원유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 전망치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석유·가스의 대규모 공급 중단 발생 시 "일시적으로 국제유가가 최대 배럴당 15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차단되면 하루 500만배럴 이상 공급 감소로 나타나고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유가 지속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정유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개선되지만 장기간 지속될 경우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어서다.

정유기업들은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한 후 수송을 거쳐 국내 판매까지 1개월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기간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기존 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하는 '재고평가 이익'이 생긴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지나치게 올라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가 위축되고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분간 정유업계는 고유가와 정제마진 개선이 겹쳐 큰 폭의 실적 상승을 보일 전망이다. 신영증권은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이 정유 부문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전년 동기보다 78% 상승한 89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순수 정유업체인 에쓰오일은 같은기간 영업이익이 36% 상승한 85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이같은 수혜가 지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정유사의 매출원가 6%는 연료비, 유가와 연동되는 만큼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비용 압박이 예상된다"며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업황 지표들의 강세가 수익성에 건전한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석유화학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원료인 나프타(Naphtha) 선물 가격이 최근 10년만에 톤당 1000달러를 돌파하면서 부담이 커졌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 제조원가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나프타 수급 불안 및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NCC 업체들은 공급 과잉에 더해 원재료 부담까지 커지며 수익성이 당분간 크게 악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국내 NCC 가동률 저하가 불가피하고 다운스트림 업체들까지 포함해 업계 전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3월 초 NCC설비 1톤당 영업손익 규모는 147달러로 1월(122달러), 2월(90달러)보다 적자폭이 크게 확대됐다"며 "나프타 가격은 급등한 반면 러시아 수출 통제에 따른 공급망 불안과 수요둔화 우려로 석화제품 구매 수요는 오히려 감소 중"이라고 진단했다.

업계에 의하면 NCC 기업들은 특히 값싼 액화석유가스(LPG), 에탄올 등을 나프타 대체 원료로 일부 투입하고 수급처 다변화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러시아 침공 사태 이전부터 관련 기업들과 대책을 모색해 왔다"며 "한시적으로 수입 나프타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긴급할당관세'를 정부에 요청하는 등 관계부처와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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