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투자자들이 지난 9일 하루 만에 1조원대 패닉셀에 나서면서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른 시일 내에 해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등을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지만 단기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사옥에서 열린 ‘야3당 정무위원회 국회의원 자본시장 현안대응 및 현장점검’에서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간사는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경제적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며 “탄핵 거부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경제가 불안정하면 국가 경제도 서민 금융도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8일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위임받아서 행사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로 인하 대한민국 경제 신용도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며 “파괴된 민생과 경제를 회복하고 내란 사태의 영향을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도록 야3당 정무위원들이 적극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9일 코스피 지수는 2.78%, 코스닥 지수는 5.19%나 급락하면서 연저점을 경신했다. 코스닥 지수는 2020년 이후 4년 7개월여 만에 최저치까지 밀렸다. 지수의 하락을 견인한 것은 개인투자자였다. 9일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는 각각 3113억원, 7918억원을 순매수했지만 개인투자자는 1조2022억원이나 순매도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날 주식 상황 브리핑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매도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계엄 사태 이전에도 굉장히 많이 팔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신경질적으로 이탈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만 주식을 살 때 한국 주식도 사고, 대만 주식을 팔 때 한국 주식도 파는 모습을 보였지만 계엄령 선포 이후에는 대만 시장에서는 사면서도 한국 시장에서는 순매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요인이 투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50원에 근접하고 있어 외환 시장에서도 정치적 불안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도 채권 시장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기업들의 선제적인 자금조달 등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임을 설명했다.
다만 김 센터장은 경기 흐름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내년 GDP 성장률 전망치는 지금 1.9%까지 낮아졌는데, 이 성장률 전망치가 조금 더 하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며 “연구기관들에서 대체적으로 내년 성장률 전망에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저는 오히려 설비 투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투자가 2년 연속 줄어든 것은 IMF 외환위기 때 2년 연속 감소, 글로벌 금융위기 때 2년 연속 감소, 미중 무역분쟁 때 2년 연속 감소했다”며 “투자라는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사회적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투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야당 정무위원들은 앞선 2차례 탄핵 정국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하면서 문제 상황의 빠른 해소가 중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때는 주가가 오히려 떨어졌고, 박근혜 정권 탄핵 소추 때는 주가가 올랐다”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불안함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는 앞으로가 예측 가능해지면서 주가가 오른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번에 계엄 해제 후 탄핵 소추가 불성립됐을 때 주가가 확 떨어졌는데 다시 말해 불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증시 안정 대책은 아주 제한적이고 결국 불안정성 해소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대한민국 대기업에는 오너 리스크가 있고 대한민국에는 대통령 리스크가 있다”며 “즉시 탄핵 말고 개인 투자자의 패닉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의견을 밝혔다.
“국민 호주머니 돈으로 장기간 경제 방어할 수 없어”

정무위 국회의원들은 금융당국의 10조원 규모 증시안정펀드의 효과에 대해서 주목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증시는 10조원 규모의 증안펀드 등 시장안정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채권시장·자금시장은 총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와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동해 안정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김 센터장은 “증안펀드나 이런 것들이 투입되더라도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불확실성 자체를 없애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10조원이라는 자금 자체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 며칠 팔면 10조원이 되기 때문에 증안펀드가 시장을 막는 큰 방파제는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정책자금이 언제 투입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없지만 시장의 유동성이 상실됐을 때 투입이 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현재 투매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유동성이 상실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증안펀드 투입이 오히려 개인투자자들에 시장이 불안하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증안펀드 가동에 대해 신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과거 사례에서 증시 안정 해법을 찾는 노력들도 이어졌다. G20에서 계엄령과 같은 사례로 경제가 출렁인 사례가 전무한 만큼 앞선 두 번의 탄핵 정국에서의 자본시장과 현재 자본시장의 비교가 이루어졌다.
김 센터장은 “2004년, 2016년 앞선 탄핵 정국과 비교해 현재 경제 환경이 제일 안 좋다”며 “2004년 대중 수출을 통해 경기를 지탱했고, 2016년 경기 사이클이 바닥을 치고 좋아지는 초기 국면이었다면 현재는 경기는 하강 사이클에 접어들고 있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경기도 약해졌고 트럼프 정부의 관세부과 등 대외적 리스크가 있어 불확실성을 감내할 수 있는 펀더멘털이 제일 취약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의 장기화를 경계했다.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 증시 규모는 세계 시장에서 10위권이지만 블룸버그 글로벌 주요 지수 93개 중 코스피 92위, 코스닥 93위로 꼴찌”라며 “국가 신인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면 채권 시장 등 중장기적인 파괴가 일어날 수 있고, 이번주 토요일 다시 탄핵을 추진하는데 또 실패하면 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거래소를 향해서도 “일본 증시가 일본 거래소의 역할로 밸류업이 성공한 사례가 있는 만큼 한국거래소도 적극적으로 앞서서 한국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병덕 의원은 “현재 개인투자자들이 쏟아낸 물량을 기관, 즉 국민연금이 방어하고 있는데 증시, 환율 방어를 우리 예산으로, 국민들 호주머니 돈으로 몇 개월 동안 계속할 수 없다”며 “지금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다시 한 번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보다 경제가 심각하게 파손될 것이라는 부분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 결단들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