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정치 리스크 불확실성이 한국 주식시장을 지속적으로 흔들고 있다. 특히 핵심 수급 주체인 외국인에 이어 개인투자자들마저 투자 지갑을 닫으면서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정치 리스크 영향이 제한적이고 낙폭 과대 업종 등을 위주로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하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일 대비 34.98p(1.44%) 하락한 2393.18이다. 코스피 지수는 장중 2374.07까지 내리며 1년 내 최저점을 경신했다.
코스닥 지수 역시 같은 시간 20.44p(3.09%) 급락했다. 장중 635.98까지 밀리며 코스닥 지수는 2020년 5월 4일(635.1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증시 약세 흐름은 개인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4000억원 이상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 불안정이 계속되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영향이다.
실제로 증시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도 지난 3일 49조8987억원에서 4일 51조4552억원, 5일 52조4692억원 등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개인투자자들이 투자를 멈추고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3일 만에 1조원이 넘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이날 전장 대비 6.8원 오른 1426.0원에 거래를 시작한 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면서 최대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및 회사채·CP 매입프로그램 등 시장안정조치를 지속하고 있다.
또 수급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밸류업 펀드 중 300억원이 이미 투입됐고 이번 주 700억원, 다음주 300억원 등 순차적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내주 3000억원 규모의 밸류업 2차 펀드도 추가 조성될 계획이다.

다만 정부의 이 같은 금융안정조치에도 당분간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적 리스크를 완화시킬 국내 호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산업 핵심인 수출은 부진하고 내수 경기도 침체돼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국내 정치 혼란이 경제나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에 그쳤지만 이번 국면은 과거 정치 혼란 국면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있다”며 “정치적 위험이 내수에 부담이 될 때 이를 상쇄해줄 만한 여건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선의 시나리오는 하루 빨리 정책 공백 우려가 진정되는 것이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경기에 덜 민감한 소프트웨어, 필수소비 업종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가 반등하려면 결국 외국인이 나서야 하는데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며 “외국인이 순매도 기조를 이어간다면 시장 흔들림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CDS 프리미엄과 외평채 가산금리가 점진적으로 오르고 있어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질 여지가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 리스크와 무관하고 금리 하락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 업종에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단기 변동성은 확대되겠지만 점차 시장 방향성은 글로벌 흐름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미국 경기는 견고하고 금리 인하 사이클은 계속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 등 각국에서도 경기부양을 위한 부양책들이 이어져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추세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2차 계엄 리스크가 현실화될 확률이 희박하고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 등이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변동성을 제어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코스피 후행 PBR이 0.85배로 연저점까지 내려오면서 가격 매력이 높아졌고 중장기적인 증시 방향성에 정치가 미치는 지속력은 길지 않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도 “과거 국내 탄핵 관련 사례들에서도 국내 증시가 초단기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으나 결국 방향성 자체는 글로벌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 내러티브들은 증시 등락 요인보다 글로벌 방향성 내에서의 국내 증시의 변동폭에 대한 결정 요인으로 이벤트 종료 시에는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누적된 피로감과 실망감, 극도로 위축된 투자심리와 수급상황으로 코스피는 작은 변수에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펀더멘털, 매크로, 투자환경이 변하지는 않았고 정치적 변수가 증시 추세를 결정짓는 경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코스피 2450~2500선 회복·안착이 확인되기 전까지 신규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며 “현재 보유 주식 비중을 줄이거나 추격매도는 실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