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증권업계가 지난 2년간의 부동산금융 충격을 지우는 한 해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를 덜어내면서 ‘1조 클럽’ 증권사가 다시 모습을 보였다. 다만, 부동산 PF 충격 회복력은 대형증권사와 중소형증권사가 차이를 보이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가 계속되면서 서학개미(해외주식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가운데 증권사의 기업가지 제고 노력도 이어졌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27개 증권사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5조8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 5조7000억원 대비 개선됐다. 지난해 실적에는 한국투자증권의 배당금 수익 1조7000억원 등 대규모 일회성이익이 반영된 만큼 전년 대비 올해 실적 개선 폭은 더 크다.
특히 복수의 증권사가 영업이익 1조원을 초과 달성할 전망이다. 3분기까지 한국투자증권은 이미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고 삼성증권(9949억원), 키움증권(9180억원), 미래에셋증권(9145억원)도 연간 영업이익 1조원대가 예상된다. 이밖에 메리츠증권(7447억원), KB증권(7355억원), NH투자증권(7339억원)도 4분기 실적에 따라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실적 개선에는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평가이익 증가와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수수료 이익 증가 등이 영향을 미쳤다.
금리 하향 안정화에 따른 부동산 PF 신규 딜이 일부 증가한 것도 효과가 있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부동산 PF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해왔고, 해외 부동산 역시 고금리에 직격탄을 맞아 대체투자 손상차손 부담이 증권사 실적 발목을 잡아왔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PF 정상화방안에 따른 경·공매 물량 증가로 PF 시장이 회복되고 있고, 유동성 경색에 따라 공사가 중단됐던 사업장 일부가 회복돼 리파이낸싱 중심으로 PF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PF 충당금 및 해외부동산 감액손실 반영이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마무리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조 클럽 이면엔 양극화 심화…서학개미 효과도 엇갈려
증권업계가 부동산 PF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회복속도는 증권사 규모에 따라 확연하게 달랐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의 경우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밑의 중소형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3분기까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9%나 늘었지만 자기자본 1조~4조원 미만의 9개 증권사의 순이익은 같은 기간 21.0% 줄었고, 자기자본 1조원 미만 9개 증권사의 순이익도 41.6%나 줄었다.
실적이 이처럼 차이나는 수수료 수익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종투사의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과 기업금융(IB) 수수료 수익이 각각 7.5%, 15.6% 늘어난 반면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감소했다.
종투사가 리테일과 IB 등 포트폴리오가 다각화 돼 있고 부동산금융 딜이 감소하더라도 전통 IB 영역에서 견조한 실적을 거둘 수 있는 반면, 비종투사의 경우 브로커리지 시장 점유율이 종투사에 비해 취약한 데다 고위험 PF 부동산금융 비중이 크고 부동산 PF의 빈자리를 다른 IB 사업이 보완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증권업계 새로운 이익 축이 된 해외주식 투자자도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온도차이가 컸다. 상반기 국내 주식시장이 반등하면서 국내주식 거래가 일평균 20조원을 상회했다. 이에 증권사들도 국내주식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증가 효과를 누린 바 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국내 주식시장이 약세 흐름을 보이고 미국 주식시장은 연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주식시장 특히 미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극대화 됐다. 지난 11월에는 외화증권 거래대금이 635억 달러(약 89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의 연간 외화증권 수탁수수료 규모는 1조3000억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 수탁수수료 규모 대부분이 일부 증권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3분기까지 초대형사 7개와 토스증권이 외화증권 수탁수수료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을 합한 위탁매매부문 손익에서 3분기까지 국내 증권사 전체로 2098억원 증가했는데, 자기자본 4조원 이상 7개 증권사가 1999억원으로 이익증가분의 95%였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전년 동기 대비 위탁매매부문 손실을 기록하면서 해외주식 거래 증가 수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해외주식 위탁 시장 시장에서 수수료율 인하 등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며 “해외주식 위탁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와 그렇지 않은 증권사 간 수익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자본시장으로 이탈 현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라는 지적에 정부를 중심으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배당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공시한 기업가치제고 계획 공시도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증권사들도 밸류업 노력에 동참해 기업가치제고 계획을 연이어 알렸다. 키움증권이 업계 최초로 공시했으며 뒤이어 미래에셋증권, DB금융투자,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이 기업가치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업이 갈수록 자기자본 중요성이 커지면서 증권사들의 자본 확충 노력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기업 밸류업이 자본시장 밸류업과 밀접하고 자본시장 밸류업이 곧 증권사의 실적과도 연결되는 만큼 증권사들도 시장과 소통하고 투자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