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난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상장 기업들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 데 이어 올해 주식시장 진입과 퇴출 과정에서도 증시 밸류업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다.
단기차익 투자 관행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 왔던 기업공개(IPO) 시장을 기업가치 중심으로 합리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주식 시장 내 저성과 기업의 적시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요건은 강화하고 절차는 효율화하는 것이다.
기관 및 주관사 역할 강화해 IPO 기업가치 중심으로 전환
최근 수년간의 제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IPO 시장에서는 여전히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중장기 투자자 역할을 해야 할 기관투자자들조차 상장 직후 공모주를 매도하여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단기차익 추구 행태로 인해 수요예측이 과열되고 적정 공모가 산정이 어려워지는 등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지난해 IPO를 실시한 77개 종목 중 96%에 달하는 74개 종목에서 상장 당일 기관투자자들의 순매도가 관찰됐다.
이에 정부와 유관기관은 IPO 시장을 단기차익 목적에서 기업가치 기반 투자로 전환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방향의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먼저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을 대폭 확대한다. 기관투자자 배정물량의 40% 이상을 의무보유를 확약한 기관에 우선 배정하게 된다. 의무보유 확약에 대한 최대 가점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 조치로 기관투자자들이 단기매도를 자제하고 기업 가치평가에 기반한 신중한 투자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요예측 참여 자격과 방법을 합리화한다. 소규모 기관투자자의 무분별한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사모운용사와 투자일임회사의 참여 자격을 강화한다. 또한 재간접펀드나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우회 참여도 제한된다.
마지막으로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다. 코너스톤투자자 제도와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주관사의 공모주 내부배정 기준도 구체화할 예정이다.
코너스톤투자자 제도는 일정기간 보호예수를 조건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투자자에 대한 사전 배정을 허용해 중·장기 투자자 확대에 긍정적이다. 사전수요예측도 공모가 밴드 설정 단계부터 시장의 평가를 고려할 수 있어 합리적 공모가 산정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선안이 IPO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고 중장기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제도 변화에 따른 시장 참여자들의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성과 기업 퇴출 강화로 자본시장 효율성 제고 추진
저성과 기업의 효율적인 퇴출을 통해 증시 전반의 가치 상승을 도모하고,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도 이루어진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상장폐지 제도는 시장 전반의 효율성보다 개별 기업과 투자자의 피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로 인해 연간 진입 기업 수 대비 퇴출 기업 수가 평균적으로 4분의 1에 불과하고, 주요국 증시와 비교할 때 상장회사 수 증가율도 높은 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저성과 기업의 퇴출 지연은 자본배분의 비효율성과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 저하 문제를 야기하며, 주가지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한다.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감사의견 미달 요건을 정비한다. 시뮬레이션 결과 최종 상향조정 완료 시 코스피는 62개사(약 8%), 코스닥은 137개사(약 7%)가 요건 미달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착륙을 위해 상향 목표치까지 3단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한다.
상장폐지 절차도 효율화한다. 심의 단계와 기업에 부여하는 개선기간을 축소해 상장폐지 사유 발생부터 최종 결정까지의 소요기간을 단축한다. 코스피는 개선기간을 최대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은 3심제에서 2심제로 축소하고 최대 개선기간도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인다.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와 실질심사 사유가 동시에 발생하면 심사를 병행해 진행하고 하나라도 상장폐지 결정이 나오면 최종 상장폐지를 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
또 투자자 보호 장치를 보완한다. 상장폐지 후 비상장 주식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K-OTC에 '상장폐지기업부(가칭)'를 신설하고 6개월간 거래를 지원한다. 상장폐지 심사 중 기업이 거래소에 제출하는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해 투자자의 알권리를 강화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유동성은 늘어나는데 한계가 있는데 상장 기업들만 많아지면서 투자가 제대로 돌지 못했던 문제 해소가 기대된다"며 "다만 퇴출 기업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IPO 제도개선 방안은 1분기 현회규정 개정, 2분기 거래소 규정 개정 등을 통해 바로 시행가능한 내용은 4월 1일부터, 준비기간이 필요한 내용은 7월 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코너스톤투자자,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은 2분기까지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한다.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은 1분기 거래소세칙 개정, 2분기 거래소규정 개정 등을 시행하고 개선기간 축소, 형식·실질 병행심사는 1분기 중 거래소 세칙 개정과 함께 바로 시행한다. 재무요건 강화는 내년 1월부터 3단계로 걸쳐 시행하며 K-OTC내 상장폐지기업부도 내년 1월 신설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개선안을 통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시장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향후 시행 과정에서의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