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한국의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해 기업의 증시 입성과 퇴출 제도를 손질하면서 구조적 개선에 나섰다. 신규 상장기업에 대한 중·장기 투자 분위기 조성을 위해 기관투자자와 주관사의 역할이 강화되고, 증시 신뢰도 하락을 유발하는 좀비기업의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하고 더 빠르게 퇴출될 수 있도록 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기존 상장사의 밸류업 노력에 자본시장 시작과 끝단에서의 개선까지 더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기업과 주관사 등 실무 영역에서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충분한 의견 교환과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21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세미나'에는 학계, 금융투자업권, 유관기관, 상장사 등 이해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조명현 고려대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패널토론에서 강화된 상장폐지 제도에 상장사들이 부담감을 드러냈고,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자산운용·증권사 등 주로 금융투자업권에서 추가적인 보완을 제언했다.
금융당국은 저성과 좀비기업들의 상장폐지 정량요건인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실효성 있는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지난 10년간 현재 요건으로 인한 상장폐지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출액 코스피 50억원, 코스닥 30억원이었던 기준은 2029년 각각 300억원, 100억원으로 상향된다. 시가총액도 코스피 5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코스닥 4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조정된다.
이에 김준만 코스닥협회 상무는 "부실기업의 조기 퇴출로 코스닥 시장이 건전화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A 코스닥 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700억원대를 유지하고, 당기순이익이 60억원대여도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해 시가총액 300억원 아래인 기업들이 있는데 이런 건실한 기업들이 이의신청을 하지도 못하고 바로 퇴출될 수 있는 만큼 시가총액 기준을 일부 낮추거나 이의신청을 통해 옥석가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제언했다.
김춘 상장협의회 정책1본부장도 상장사의 증시 퇴출요건과 관련해 "매출액, 시가총액을 현실화해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 "매출액이나 시가총액이 낮아서 상장이 폐지되는 상황이지만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경우 코스닥·코넥스 등의 시장으로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절차에서 효율화 외에 여러 시장 관계자들에게 눈길을 끈 부분은 상장폐지 심사 중 기업의 개선계획 공시였다. 그동안 상장폐지 심사 기간 중 거래소의 심사절차와 관련된 공시를 제외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려워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했다.
송창준 한양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기업의 개선사항 관련해 투자자와 거래소 등의 정보 비대칭성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공시하도록 한 점은 이러한 비대칭성 완화에 긍정적"이라며 "기업들이 개선사항을 제출할 때 부풀려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공시가 되게 되면 향후 투자자들로부터 소송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기업이 보수적인 측면에서 이행 가능한 부분만 공시가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춘 본부장은 "개선계획의 공시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IPO 중장기 투자 유도를 위한 제도 개선에서는 금융투자업권에서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는 단기차익 투자 중심의 IPO 시장이 기업가치 기반의 투자 분위기로 조성될 수 있도록 기관투자자 배정물량의 40% 이상을 의무보유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기로 했으며, 소규모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 자격을 강화했다. 또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유승창 KB증권 ECM본부장은 "시장 리스크가 종목 리스크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기관투자자의 의무 보유 확약이 주관사의 부담으로 이어져 보수적으로 IPO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IPO 물량 공급 감소가 우리 모험자본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주관사가 IPO에서 수익성이 나빠지면 IPO 인력 유치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는 결국 IPO 퀄리티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관사의 수익성도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본부장은 기관의 의무보유 확대가 상장 후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보호 예수에 의무보유 확약까지 늘어나게 되면 상장 초기에 유통 물량이 굉장히 적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가격 제한폭이 400%까지 있는 상황에서 유통물량도 적다면 단기 차익을 노린 여러 가지 매매 세력들의 부작용 우려가 있어 대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관 라이프자산운용 부사장은 "공모가 왜곡이 일부 있었는데 이번 개선을 통해 다수 시장참여자들이 합리적인 가격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어느정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나 새롭게 자본시장에 참여를 하는 주체들의 위축이 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여러 시장주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상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이번 제도 개선과 관련해 약하다는 의견도, 강하다는 의견도 있어 균형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며 "이번 개선안은 그간 논의돼왔던 사항들에 대해 기존보다는 과감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증시 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 개편 방안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공매도 제도 개선, ATS 출범, 파생상품 야간시장 개장, 비상장주식 플랫폼 제도화 등 업권 이슈보다 시장 구조적 측면에서 개편 작업이 올해 쭉 예정돼 있다"며 "취지에 맞게 잘 운영이 되면 불필요한 규제는 다시 점검해서 없애고 필요한 부분은 제도화해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호 금융감독원 공시심사국장도 "이번 정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실제 원하는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 시장에서 우려하는 부작용들이 실제로 발생할지에 대한 사후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번 정책이 실제 부작용 없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사후 관리를 잘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