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아메리칸드림'을 비로소 완성했다.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 부품을 조달하고 조립 생산하는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구축한 것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미국 수출이 50만대를 넘으면 통상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며, 미국 현지 생산 체제가 필요하다고 예견했다. 이에 정의선 회장은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 제철소 건설까지 확정 지으며 통 큰 배팅을 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 현지 자동차 공급망을 구축함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회장은 미국 백악관에서 직접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30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구체적으로 ▲자동차(86억달러) ▲부품·물류·철강(61억달러) ▲미래산업·에너지(63억) 부문 등에 투자를 집행한다.
자동차 부문은 연산 100만대 수준인 현지생산 체제를 120만대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전기차 전용 공장이었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을 30만대에서 향후 50만대로 확대하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혼류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서는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270만톤(t) 규모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결정이 눈에 띈다. 중형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동차 강판은 약 1톤이다.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연산 120만대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 큰 배팅을 한 셈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70년 이상의 전기로 운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고픔질의 자동차 강판을 현지 생산해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고,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주요, 신규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서는 현대차그룹 미국 현지 법인인 보스턴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 슈퍼널(Supernal), 모셔널 (Motional)의 사업화에 속도를 낸다. 지능형 로봇 개발, AAM 기체 상용화, 레벨 4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 등을 위한 투자를 이어간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각종 자동차 부품은 물론, 차 강판까지 조달해 생산하고 판매하는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대차그룹이 통상 압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지 공급망을 구축함으로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위협과 민주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모두 대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의 통 큰 배팅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 미국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당시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20만대를 밑돌았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IMF 사태 영향으로 기아자동차(기아)까지 품에 안으며 현대차·기아의 수출 규모가 커지자, 정 명예회장은 미국의 통상 압력을 예견했다. 수출 50만대가 넘어가면 미국의 간섭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2005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2010년 기아 조지아 공장까지 준공하며 미국의 압박에 대비했다. 연산 70만대 규모의 현지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톱3'로 올라선 원동력이 됐다.
정의선 체제로 들어선 뒤로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현대차 'DNA'를 발휘하고 있다. 전기차 전용 신공장 투자 결정에 이어 제철소 현지 건설 계획까지 밝히며 미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에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선 회장을 미국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한 현대차그룹을 칭찬하며 오는 4월 부과하기로 한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와 상호 관세를 완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세계 2위 자동차 소비국으로, 중국과 함께 놓쳐선 안 될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업계는 정의선 회장의 이번 통 큰 배팅이 글로벌 '톱3'를 넘어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의선 회장은 "오늘 저는 향후 4년간 21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추가로 발표하게 돼 기쁘다. 이는 우리가 미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라면서 "현대차그룹은 여러분의 리더십과 함께 미국 산업의 미래에 더 강력한 파트너가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국내 및 미국 대규모 투자는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과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라며, “과감한 투자와 핵심 기술 내재화, 국내외 톱티어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미래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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