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EB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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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약속한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의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앞서 대미 투자를 결정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2분기부터 본격적인 반도체 시황 반등이 기대되는 가운데 미국발 정책 리스크가 업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반도체법을 재검토하고 보조금 지급 규모를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1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미국 투자 억셀러레이터’ 설립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022년 8월 발효된 반도체법에 따라 527억 달러 지원금을 배분·집행하는 반도체법 프로그램 사무국(CPO)도 이 기구 산하에 두도록 했는데, “전 정부보다 훨씬 나은 합의를 협상할 것”이라고 밝혀 이미 확정된 보조금의 지급 규모와 시기 등을 재협상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지난 1일 미국 상무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상무부 내에서는 보조금 지급을 철회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해졌다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최근 몇 달 동안 경쟁사에 밀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정책 변화는 미국 정부가 보조금 규모를 늘리지 않고도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 TSMC는 지난달 미국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 변화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보조금 규모와 지급 시점 모두 불확실성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바이든 정부로부터 전체 투자금의 약 12.8%에 해당하는 47억4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총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도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을 확정받았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 전용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1분기 둔화했다가 2분기부터 회복 흐름에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5년 1분기 영업이익은 5조16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8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을 6조50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2조8860억원)보다 크게 늘었지만 작년 4분기(8조1000억원)와 비교하면 1조원 이상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업계는 2분기부터는 ‘반도체의 봄’을 맞아 실적 회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D램 3강 중 하나인 미국 마이크론이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공식화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점진적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 및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는 낸드와 D램 가격 반등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D램, 낸드 공급이 고객사 요청 주문량의 절반에도 못 미쳐 고객사들의 긴급 주문이 증가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실적은 1분기를 저점으로 4분기까지 실적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러한 실적 반등 흐름도 트럼프 리스크라는 대외 변수에 의해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긴 회수 기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책 불확실성이 투자 결정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반도체 시장 자체의 사이클보다 지정학적·정책적 리스크가 더 위험 요소”라며 “미국의 보조금 기조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전략도 재조정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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