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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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 중산층 부담 완화를 위한 상속세 개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경제계가 기업승계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대안으로 '상속세-자본이득세 Hybrid(결합) 방식'을 공식 제안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지속을 위한 상속세-자본이득세 Hybrid 방식 제안' 보고서를 통해 "현행 상속세는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하던 시대에 도입돼, 최대주주 할증평가 등으로 주식에 대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왔다"며 "기업 승계 시 세금을 현재처럼 상속 시점이 아니라, 향후 매각 시점에 부과하는 자본이득세 방식을 병행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10일 밝혔다.

자본이득세는 자산을 상속받을 때가 아니라 향후 매각할 때의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식 처분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속 즉시 세금을 부과하면 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 세금 납부 시점을 유예하자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기업 계속성 위협"

우리나라는 최고세율 50%에 최대주주 할증평가 20%가 더해져, 전 세계에서 기업 승계가 가장 어려운 국가로 꼽힌다. 이에 따라 기업의 지속성이 위협받고, 투자와 성장 둔화, 주주환원 제약 등 경제 역동성 저하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제계의 최고세율 인하 및 할증평가 폐지 요구를 '부자 감세'로 간주하고 있어, 대한상의는 기업승계 부담을 덜기 위한 '대안적 결합 방식'을 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기업뿐 아니라 고액 자산가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사 헨리앤드파트너스(Henley & Partner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0만 달러 이상 순자산 보유자의 순유출 규모에서 한국은 1200명으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은 수치로, 인구 대비로는 영국 다음으로 많다. 브렉시트 이후 자산가 유출이 지속되는 영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출처=대한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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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주요국들은 기업 경영과 자산 유지를 위한 유연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OECD 38개국 중 상속세가 아예 없는 국가는 14개국에 달하며, 캐나다·호주·스웨덴·뉴질랜드 등은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캐나다는 1972년 세계 최초로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 체계를 도입했으며, 호주는 농민과 중소기업인의 승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979년부터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하고 1985년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스웨덴 역시 2005년 가족기업의 경영 불확실성과 중산층의 노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고, 30% 단일세율의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상속세 폐지를 통해 금융자본과 인재 유입을 이끈 대표 사례로는 싱가포르가 있다. 싱가포르는 2008년 상속세 최고세율 60%를 전면 폐지하며 자산가 유치를 확대했고, 이로 인해 아시아 금융허브로 급부상했다.

헨리앤드파트너스에 의하면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국가들은 고액자산가 순유입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2024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가 6700명으로 1위, 싱가포르 3위(3500명), 캐나다 4위(3200명), 호주 5위(2500명) 순이다.

■상의, 3가지 결합 방식 제시…납부 유예·세대 구분 방식 포함

대한상의는 기업 승계 부담 완화를 위한 세 가지 상속세-자본이득세 결합 방식을 제안했다.

첫째는 납부 시점별 분리 방식이다. 피상속인 사망 시점에 최고 30% 상속세를 먼저 부과하고, 이후 상속 주식을 매각할 때 20%의 자본이득세를 추가 부과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승계 직후의 세금 부담을 분산시켜 경영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과세 대상별 분리 방식이다. 부동산·채권 등 경영권과 무관한 자산에는 기존 상속세를 유지하되, 경영권과 직접 연결된 주식에는 자본이득세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기업 경영의 연속성과 현금화의 어려움을 고려한 접근이다.

셋째는 상속가액별 분리 방식이다. 전체 상속재산 중 일정 기준 이하(600억원)는 기존 상속세를 유지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만 자본이득세를 적용하는 구조다. 이는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보완책으로 설계됐다.

이와 함께 상의는 상속세 납부 방식의 유연성도 주문했다. 현재 중소·중견기업에는 최대 20년(10년 거치 후 10년 분할납부)이 허용되지만, 대기업은 거치기간 없이 10년 분할납부만 가능하다. 이에 대기업도 5년 거치 후 5년 분할납부를 허용하고, 거치기간 선택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저성장, 보호무역, 산업 전환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기업 환경을 좌우하는 제도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지금은 소수 기업에 국한된 가업상속공제를 넘어, 전체 기업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승계제도를 마련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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