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노리 시음회에 안티노리 산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다. [출처=EBN]
안티노리 시음회에 안티노리 산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다. [출처=EBN]

지난 12일 오전, 서울 반포 세빛섬 무드서울에서 와인 수입사 아영FBC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이너리, 안티노리(Antinori)의 대규모 시음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미디어 전용 세션을 포함해 업계 관계자와 일반 소비자까지 초청된 가운데, 총 30여 종의 와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안티노리의 방대한 와인 포트폴리오였다. 이탈리아 주요 생산지를 비롯해 미국, 헝가리, 칠레 등 전 세계에 걸쳐 운영 중인 안티노리 산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다양한 와인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670년 넘게 단 한 번도 가업이 끊기지 않은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서, 안티노리는 이번 시음회를 통해 브랜드 철학과 대표 라인업의 정수를 선보였다.

티냐넬로(Tignanello)와 솔라이아(Solaia)를 중심으로, 미국 나파밸리의 전설적인 와이너리 스택스 립 와인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역의 화이트 와인 명가 예르만(Jermann) 등 주요 브랜드도 함께 소개됐다.

와인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안티노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안티노리는 최근 몇 년간 굵직한 와이너리 인수를 통해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확장해왔다.

2021년에는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 지역의 화이트 와인 명가 예르만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레드 중심의 라인업에 균형을 더했다. 2023년에는 ‘파리의 심판’에서 프랑스 그랑크뤼를 제친 전설적인 와인,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며 단독 소유주로 올라섰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각 브랜드의 유산과 품질을 존중하면서도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안티노리의 전략적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영FBC 관계자는 "'안티노리'는 와이너리 이름 하나만으로도 대형 시음회를 기획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시음회는 아영FBC가 국내 독점 수입·유통하는 안티노리 와인의 품격과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출처=EBN]
귀도 바누치(Guido Vannucchi) 안티노리 세일즈 마케팅 엑스퍼트 (Sales Marketing Expert)가 시음회에 준비된 와인들을 소개하고 있다.[출처=EBN]

첫 잔으로 안티노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티냐넬로'를 선택했다. '수퍼 투스칸'이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낸 이 와인은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키웠다.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까베르네 소비뇽과 까베르네 프랑이 더해진 블렌딩은 복합적인 향과 구조감으로 인상적이었다. 체리와 말린 허브, 약간의 토양향과 부드러운 오크 터치가 조화를 이뤘고, 목넘김 이후에도 은은하게 남는 향은 맛의 균형을 잡았다. 

두 번째로 마신 솔라이아(Solaia)는 티냐넬로보다 훨씬 밀도 높은 풍미가 특징이었다. 

솔라이아는 2000년 '와인 스펙테이터' 선정 세계 100대 와인 1위라는 전무후무한 이탈리아 와인의 기록을 지닌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를 이루는 이 와인은 훨씬 더 국제적인 스타일로, 농익은 블랙베리와 스파이스, 초콜릿 풍미가 강하게 드러났다.

미국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스택스 립 와인셀라(Stag’s Leap Wine Cellars)는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인을 제치고 우승한 'S.L.V.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안티노리는 2007년부터 이 와이너리에 지분을 보유해오다 2023년 지분 전량을 인수하며 단독 소유주가 됐고, 올해부터는 아영FBC를 통해 국내 단독 수입이 시작됐다.

이번 시음회에서는 스택스 립의 대표 레인지인 FAY, S.L.V., CASK 23이 모두 제공됐다. 세 와인은 서로 다른 포도밭에서 수확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동일한 품종임에도 각기 뚜렷한 개성과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다.

스택스립 와인 라인. [출처=아영FBC]
스택스립 와인 라인. [출처=아영FBC]

FAY 카베르네 소비뇽은 유연하고 섬세한 스타일로 부드러운 타닌과 잘 익은 붉은 과일향이 중심을 이뤘다. 허브와 라벤더, 약간의 미네랄 터치가 더해져 전체적으로 밝고 우아한 인상을 남겼다.

S.L.V. 카베르네 소비뇽은 보다 강건한 구조감이 돋보였다. 블랙베리, 감초, 다크 초콜릿 계열의 풍미가 두드러졌고, 숙성 잠재력과 깊이를 동시에 갖춘 구성이다. 미묘한 흙내음과 오크의 조화도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CASK 23 카베르네 소비뇽은 위 두 와인의 블렌딩을 통해 만들어지며 '정제된 힘'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복합성과 균형감이 뛰어났다. 농익은 과일, 삼나무, 스파이스, 초콜릿 등의 풍미가 다층적으로 전개되며, 여운이 길고 유려했다.

세 와인을 모두 시음하며 느낀 것은 스택스 립이 단순한 '파리의 심판의 승자'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나파밸리 테루아의 정수를 고급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안티노리가 이 와이너리를 단독 인수한 배경에는 그 철학과 잠재력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역의 화이트 와인 명가 예르만(Jermann)도 인상 깊었다. 2021년 안티노리가 인수한 이 와이너리는, 산도와 미네랄이 뛰어난 블렌딩 화이트 와인 '빈티지 투니나(Vintage Tunina)'를 선보였다. 쇼비뇽 블랑, 샤르도네, 리볼라 지알라 등을 혼합해 복합적인 향과 함께 깔끔하고 정제된 맛을 구현했다.

1385년 피렌체 와인 조합에 처음 등록된 이후, 안티노리는 26대에 걸쳐 와인을 만들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린 이 가문은, 현재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세 딸이 운영에 참여하며 '열정(Passion)' '인내(Patience)' '끈기(Perserverance)'라는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음회를 통해 마주한 안티노리의 와인들은 단순한 프리미엄 와인을 넘어, 전통과 전략, 그리고 브랜드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물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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