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 생활산업부 기자
이윤형 생활산업부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보유 지분 전량을 무상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이어진 매각 실패와 이에 따른 자산 유동화 시도는 결국 회생절차라는 마지막 문턱 앞에서 멈춰섰고 MBK는 투자 회수를 포기하며 퇴장을 택했다.

겉으로는 단순한 경영 실패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홈플러스의 '인가 전 인수합병(M&A)' 추진은 한국 유통산업 전반에 울리는 구조적 경고음으로 해석된다.

MBK가 2015년 약 7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의 지분을 전량 무상소각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더 이상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산업 구조의 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산업은 지난 10년간 내리막을 걸었다. 소비자 발길은 줄고, 온라인 중심의 소비 생태계가 시장 질서를 빠르게 바꿔놓았다.

실제로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은 2017년을 정점으로 6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고객 1인당 구매 빈도, 체류 시간, 객단가 모두 하락세다. 오프라인 유통 모델은 점점 '수익 기반'이 아닌 '비용 구조'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홈플러스가 보유한 126개 대형마트와 308개 SSM 점포는 더 이상 '자산'이 아니었다. 정부의 출점 규제, 영업시간 제한 등 외부 제약도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누적되며 오프라인 유통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고정비 중심의 운영 구조는 수익을 짓눌렀고 디지털 전환과 온라인 소비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7조원대 자산을 보유하고도 유동성을 잃었고 회계법인 평가에서 '청산 가치가 계속기업 가치보다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홈플러스는 구조적 딜레마의 중심에 있었다. 수익성 회복을 위한 점포 구조조정은 브랜드 신뢰와 유통망 가치를 훼손했고 이를 미루면 경직된 고정비 부담이 누적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중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어떤 대기업이나 자산운용사도 피하기 어려운 '고정비 함정(fixed cost trap)'에 갇힌 셈이다.

사모펀드 특유의 '수익 개선 후 재매각' 전략은 오프라인 유통산업의 현실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장기 보유와 혁신 투자 없이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빠르게 재편되는 소비 생태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PEF 업계에서도 이번 사례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유통 산업은 고객 경험, 데이터 기반 마케팅, 물류·풀필먼트 역량 등 '디지털 자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이는 자산 유동화, 비용 절감, 단기 수익 개선을 통해 수년 내 엑시트하는 데 초점이 맞춰있는 전통적인 자산 효율화 중심의 사모펀드 접근 방식과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이러한 부적합성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매각이 성사된다 해도 이는 구조조정의 기술적 성과일 뿐 산업 경쟁력 회복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는 유통업계에 더 이상 과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 전환, 소비 트렌드 변화, 정책 리스크를 감안하면, 유통업에 대한 사모펀드의 투자 전략 역시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기업회생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이면에는 단지 경영상의 실패가 아닌, 기존 '사업 모델' 자체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홈플러스 위기가 유통가에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이 산업의 본질은 '점포 수'가 아니라 '고객 접점의 질'에 있다는 사실이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