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생성 이미지.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70446_686055_1943.png)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복제약 천국’으로 불렸던 중국이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신약 개발 중심지로 떠올랐다. 중국이 바이오테크 산업에서도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글로벌 제약 생태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이에 제약 산업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또 다른 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자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4년 한해 동안 중국에서 개발에 착수한 항암제·체중감량제 등 혁신 신약의 수는 1250개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1440개)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유럽연합(EU)에 비해서는 크게 앞선다. 2015년 160개에 불과했던 중국의 신약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은 10년 사이 8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은 2015년 이후 중국 정부의 약가와 허가 제도 개혁, 데이터 품질과 투명성 강화, ‘중국제조 2025’ 전략 등 일련의 국가 주도 바이오 육성 정책이 뒷받침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해외 유학파 과학자들과 창업가들이 대거 귀국하며 기술 혁신을 주도했고, 기존 제약사들도 복제약에서 신약 연구개발(R&D)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지닌 가장 큰 경쟁력은 임상시험의 속도와 비용이다. 대규모 환자 풀과 중앙집중식 병원 시스템을 기반으로 임상 1상~2상 환자 모집 속도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며, 임상시험 비용 또한 현저히 낮다.
이 덕분에 중국 기업들은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빠르게 실험할 수 있어 연구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블룸버그통신의 설명이다. 실제로 2021년 이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을 시작한 국가로 자리매김하며 ‘글로벌 임상 허브’로 부상했다.
신약의 ‘질’ 또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주요 규제기관은 최근 중국산 신약에 대해 신속심사 및 혁신치료제 등 우선 심사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EMA의 신속심사 대상에 포함된 중국산 신약 수는 EU산을 넘어섰으며, 레전드 바이오텍이 개발한 혈액암 세포치료제는 존슨앤드존슨이 상용화해 미국 경쟁제품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바이오 혁신은 글로벌 투자도 이끌어내고 있다. 2022년에는 서밋 테라퓨틱스가 중국 아케소의 항암제 판권을 5억달러에 인수했고, 올해는 화이자가 3SBio의 항암제에 12억달러 선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머크,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등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도 잇따라 중국 바이오기업들과 협업하며 ‘차이나 파이프라인’이 글로벌 신약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다만 중국 내 임상 데이터만으로는 FDA 등 해외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비(非)중국인 대상의 임상시험과 국제 기준 충족이 필수다. 현재 미국이나 EU에서 대규모로 사용되는 중국 신약은 아직 드물지만, 업계에서는 조만간 중국산 신약이 본격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점친다.
중국 바이오 혁신의 주역은 해외 유학파 창업 스타트업과 기존 대형 제약사들이다. 장쑤 헝루이제약은 2020~2024년 신약 파이프라인 증가 건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으며, 이 기간 혁신 신약 후보를 가장 많이 개발한 50개사 중 20곳이 중국 기업이었다.
중국 바이오테크의 급부상과 함께 미중 기술·경제 패권 경쟁의 핵심 축도 옮겨가고 있다. 미국 의회와 제약 업계는 “바이오 분야마저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며 연구장비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 등 다양한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반면 중국 바이오기업들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혁신은 국경을 초월한다”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바이오테크 산업은 양적·질적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신약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됐다”며 “의료 혁신의 중심축이 변하고 있으며, 차이나 파이프라인의 세계적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