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한 휴대폰 대리점 [출처= 김채린 기자]
경기도 소재 한 휴대폰 대리점 [출처= 김채린 기자]

새 정부가 시작된 2025년 하반기, 국내 통신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 제4이동통신사 도입 논의, 망사용료 제도 개편 등 구조적 개혁이 동시에 추진되며 통신 시장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어서다. 정부와 국회, 통신 3사, 글로벌 콘텐츠 기업, 소비자 단체 간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하며, 업계는 유례없는 혼돈과 기회의 양면을 맞닥뜨리고 있다.

1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오는 22일 2014년 제정된 단통법이 폐지된다. 단통법 폐지에 따라 10년간 유지돼 온 ‘공시지원금+추가지원금’ 체계가 사라지고, 이통사·제조사·유통점이 자율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표면적으로 시장 자율성 확대를 위한 조치지만, 실상은 ‘보조금 전쟁’의 재점화라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단통법 폐지를 앞두고 LG유플러스와 KT 일부 매장에선 사전예약 고객에게 100만원 이상 리베이트를 제공하며 ‘성지 마케팅’이 재현되고 있다. SK텔레콤은 불법 보조금 지급 행위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직접 신고하며 마케팅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앞서 단통법은 추가 보조금을 단말기 지원금인 공시지원금의 15%까지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제정됐다. 휴대전화 등 단말기 판매업자가 고객에게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고객 차별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후 시장 경쟁이 제한돼 지원금 혜택이 하향 평준화됐고 불법 보조금이 성행하면서 고객 차별을 없앤다는 단통법의 도입 취지마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그간 단통법 폐지 논의가 이어져 온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월 22일 단통법 폐지 기조를 밝혔다. 통신사와 유통점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 촉진을 통한 국민의 저렴한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 기회 제공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규제 공백 속에서 혼란과 소비자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혼선은 단순한 유통 이슈를 넘어, 통신요금 구조와 시장 질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가 지난해 2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사업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제4이동통신사로 점쳐졌던 스테이지엑스는 지난해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주파수 할당 대상법인 선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출처= 연합]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가 지난해 2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사업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제4이동통신사로 점쳐졌던 스테이지엑스는 지난해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주파수 할당 대상법인 선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출처= 연합]

하반기 또 하나의 핵심 변수는 제4이동통신사 도입 논의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였던 제4이통사 정책이 국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알뜰폰 활성화와 망 도매요율 인하 등의 조치가 시행된 가운데, 하반기엔 신규 사업자 진입을 위한 제도 설계가 본격 검토될 전망이다.

그러나 통신 3사는 시장 포화와 초기 망 투자 비용 문제를 들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4통신사의 출범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기존 통신3사의 과점 구도가 더 공고해지면서 시장 경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결과 통신3사간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출처= 게티]
[출처= 게티]

망사용료 제도 개편도 통신업계의 또 다른 화약고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국내 통신망을 이용해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정당한 망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글로벌 CP들은 “망사용료는 이중 과금이며, 비용 전가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며 맞서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연내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개정을 예고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트래픽 유발 책임’ 산정 방식이다. AI,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이 요구하는 초고용량 트래픽 환경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망 투자비를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 권한 정비, EU와 미국 등 해외 규제 동향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단통법·제4이통사·망사용료 등 세 가지 이슈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통신산업 전체의 수익 구조, 규제 프레임워크, 생태계 균형을 재편하는 변곡점”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10년간의 통신산업의 향방은 올 하반기 정책에 달렸다. 통신 3사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탈피할 것인지, 글로벌 CP와의 협력·규제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소비자의 실질적 통신비 부담 완화와 기술 진보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따라 한국 통신시장의 다음 단계가 결정된다. 

정부는 연말까지 ‘통신시장 경쟁촉진 종합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회는 단통법 폐지 이후의 보조금 질서와 신규 통신 사업자 제도 설계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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