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CEO 스코어]
[출처= CEO 스코어]

최근 1년 사이 국내 자산 상위 50대 그룹 가운데 70%를 넘는 36개 그룹에서 오너 일가의 지분 변동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약 1조원에 달하는 상속·증여가 이뤄지며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정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30일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총 9,783억원 규모의 오너 일가 보유 주식이 상속 또는 증여 형태로 이전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고령 오너들의 경영권 이양과 차세대 체제 전환이 한층 가시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가장 큰 규모의 증여는 한화그룹에서 발생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4월 한화 보통주 848만8,970주(4,087억원 상당)를 세 아들에게 증여하며 그룹 지배력 재편에 시동을 걸었다. 이로써 세 형제의 한화 지분율은 기존 18.8%에서 42.8%로 대폭 상승했다. 사실상 한화의 차기 경영구도가 확정된 셈이다.

신세계그룹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지난 5월 본인이 보유하던 신세계 지분 전량(약 1,751억원)을 딸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넘기며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정 회장의 지분율은 29.2%로 치솟으며 그룹 내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효성그룹은 고(故)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산 정리가 마무리되며 계열사 지분 분배가 이뤄졌다. 부인 송광자 여사는 공덕개발㈜ 주식 490억원어치를 상속받았고,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도 복수 계열사의 주식을 상속받으며 가족 간 소유지분 정리가 마무리됐다.

LG그룹 계열사인 LX그룹은 주가 흐름을 고려한 전략적 증여가 눈에 띄었다. 구본준 회장은 LG 주식 157만3,000주(1,057억원)를 장남 구형모 LX MDI 사장에게 증여했다. 주가 하락에 따라 증여를 두 차례 취소했다가 시점을 조정해 재증여하며 절세 효과를 노린 모습이다.

형제 간 교차 증여도 있었다. 정몽진 KCC 회장은 동생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의 가족에게 주식을, 정몽익 회장은 정몽진 회장의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며 그룹 지배구조를 재편했다. 가족 간 교차지분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소유구조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분 매수 측면에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정 회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이 보유하던 ㈜이마트 지분 전량(2,251억원 규모)을 사재로 매입하며 단숨에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마트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향후 유통·커머스 영역의 독자적 전략 구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넥슨 그룹도 유사한 자산 정비 작업이 있었다. 유정현 NXC 의장의 두 딸은 각각 1,650억원을 투자해 가족 법인인 유한책임회사 ‘와이즈키즈’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는 차세대 경영 승계를 위한 사전 작업이자, 자산 분산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효성그룹에서는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상호 지분 매수 방식으로 계열사 주식을 거래하며 내부 소유구조를 조정했다. 가족 간 주식 교환을 통해 각자 맡은 계열사의 지배력을 명확히 하는 전형적 ‘지배구조 정비 전략’으로 평가된다.

이번 오너 일가의 지분 변동은 단순한 자산 이전을 넘어, 경영권 안정과 차세대 체제 구축, 그리고 세금 전략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된 복합적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특히 주가 흐름을 고려한 증여 타이밍 조정, 형제 간 교차 증여 등 정교한 설계가 눈에 띈다.

이 같은 흐름은 고령 오너 세대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후계자 중심의 구조 재편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사전 차단하고,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지배 체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제 경영권 승계는 단순한 증여·상속을 넘어 철저한 자산 전략과 지분 리스크 관리의 문제”라며 “오너 일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그룹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증여와 매수 행보는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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