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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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조 단위 과징금 리스크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과징금 산정 기준을 결정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해 곧 심사를 내릴 예정이다.

과징금이 반영되면 금융당국이 유도하고 있는 기업대출이 위축될 수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례회의에서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금액'으로 확정했다. 단순 수수료 수입이 아니라, ELS 계약 전체 금액의 50% 이내로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는 의미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총 판매액은 약 16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 2조1310억원, 하나은행 2조1183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등이다. 단순 계산으로만 보면 금융위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최대 8조원에 이를 수 있다.

은행들은 이미 자율배상을 통해 상당 부분 고객 피해를 보전한 만큼 이중 처벌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말 기준 6만6000건이던 자율배상 신청 계좌는 12월 말 16만9000건으로 급증했고, 이 가운데 15만9000건이 최종 동의했다. 배상 완료율은 93.8%에 달한다.

자율 배상 부분은 이미 금융지주들 실적에 반영한 상태다. 금융감독원도 이 같은 자율조치를 감경 요소로 인정해 왔다. 당국은 수개월 내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 과징금 수위를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공정위, LTV 담합 재심의…조 단위 과징금 우려 재부각

시중은행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LTV 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7500건이 넘는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사전 공유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사실상 경쟁을 회피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새로운 주장과 반박이 제기되며 일시 보류됐고, 이달 초 은행들은 담합 의혹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공정위의 재심사 결과는 연내 나올 수도 있다. 

이번에 공정위가 내놓을 과징금 규모는 수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초안 단계에서는 검찰 고발 의견도 담겼지만, 최종 보고서에서는 이를 철회하고 대신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액을 상향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연내 최종 제재 수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LTV를 낮추면 되레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수익도 줄어드는 만큼 은행이 담합할 유인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담합으로 인해 이득을 본게 없다는 입장이다. LTV 관련 정보는 은행 창구에 가면 오픈되는 정보인 만큼 경영상 기밀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경쟁을 줄였다는 이유만으로 담합으로 보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LTV 문제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과도 연결돼 있는 사안이다. 공정위가 담합 규제를 내리게 되면 가계대출 억제책을 두고 부처 간 충돌하는 모양새다 된다. LTV는 그동안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조절 수단으로 쓰여왔다.

과징금 자체도 우려 요인이지만 과징금 반영으로 기업대출 여력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은행은 대규모 과징금을 맞을 경우 해당 금액을 내부 자본으로 반영하는데, 자본 건전성을 평가하는 위험가중자산(RWA) 항목에서 최대 600~650%의 가중치를 적용받게 된다.

1조원의 과징금은 약 4대은행 전체에 6조원 가량의 RWA 확대로 이어진다. RWA가 증가하면 기업대출 여력이 줄어들수 밖에 없다. 

물론 그사이 정권이 바뀌면서 기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공정위의 LTV 담합 조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금융 독과점 규제’ 지시에 따라 착수됐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조사 동력이 약화됐다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가 조 단위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최종 제재를 내리면 새 정부가 내세우는 '생산적 금융'과도 배치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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