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롯데케미칼]
[출처=롯데케미칼]

장기 불황 속 석유화학업계가 정부의 재편 원칙 발표를 계기로 설비 감축과 구조조정 논의에 본격 돌입한다.

정부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주문하며 감축 목표와 시한을 못박은 만큼, 협상이 속도를 내 경쟁력 강화와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주요 10개 석화업체는 최대 370만톤 규모의 납사분해시설(NCC) 감축을 목표로 연말까지 각사별 사업재편안을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대형 NCC 3기를 줄이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업계는 여수·대산·울산 등 주요 산단에서 대기업 NCC를 각각 1기씩 줄이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해관계가 얽혀 자율 논의가 지지부진했지만, 정부가 감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큰 틀의 로드맵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특히 연말 데드라인이 압박으로 작용해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설비 감축 과정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적거나 경쟁력이 약한 설비가 우선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정유사와 석화사 간 수직적 통합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관측한다. 정유사와 협력하면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NCC 생산능력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산산단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NCC 설비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HD현대오일뱅크가 현금이나 현물로 출자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 예외 적용, 보편적 전기료 인하, 구체적 제재 수단 등이 빠지면서 구조조정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업계는 담합 규제와 독과점 제한이 유연하게 풀리지 않으면 기업 간 합의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개별 사업 재편안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원활한 추진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구조조정이라는 목표 달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는 이와 관련 "개별 사업재편안에 따라 공정위 등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원활히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변수는 시간이다. 불과 4개월여 안에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협상 상황에 따라 시한 연기 가능성이 있고, 감축 목표량도 현실을 반영해 조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한 내 구조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부 지원에서 배제돼 자력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현 위기 국면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정부가 인센티브와 예외 조치를 해주면 실효성 있는 구조개편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제시안이 구체적으로 나온 만큼, 전보다 진전된 실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정부와 업계 간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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