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모형. [출처=삼성SDI]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모형. [출처=삼성SDI]

전기차 산업의 차세대 '심장'으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와 관련 글로벌 자동차·배터리 업체들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안전성·주행거리·에너지 효율에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면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상용화 시점을 2027년 전후로 설정하고 총력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물론 토요타·폭스바겐·BMW·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 종류에 따라 황화물계, 산화물계, 고분자계 등으로 나뉘며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기술로 꼽힌다.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발화·팽창 위험이 크지만, 전고체는 고체 전해질을 적용해 안정성을 크게 높였다.

별도의 안전장치를 줄일 수 있어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효과도 따른다. 다만 계면저항 문제, 신소재 확보, 대량생산 공정 등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만큼 연구개발 장벽은 높다.

■일본·독일 선두…토요타와 폭스바겐 양강 구도

현재 전고체 연구개발 단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한 곳은 일본 토요타다. 1995년부터 전고체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 토요타는 2008년 전담 연구소를 설립해 정부와 학계까지 참여시키며 장기적 투자를 이어왔다.

당초 2022년 전고체 탑재 차량 출시를 목표했지만 기술적 난관으로 2027년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여전히 글로벌 특허 보유 규모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미국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와 협력하며 전고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회사 파워코를 통해 연간 40GWh 생산이 가능한 라이선스를 확보했으며, 최대 80GWh까지 확대 가능한 옵션도 보유했다. 이는 유럽 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BMW는 미국 솔리드파워와 손잡고 2020년대 내 전고체 탑재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솔리드파워는 포드, 삼성벤처투자, 현대크래들 등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포드는 대규모 투자자로 참여하며 장기적 기술 내재화를 노리고 있다.

현대차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7년부터 남양연구소에서 독자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며, 2020년에는 현대차 주요임원들이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2030년 전후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삼성SDI, 900Wh/L 세부 양산 준비 로드맵 공개

삼성SDI는 전고체 상용화를 2027년으로 못 박고 글로벌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독자 조성한 전해질과 무(無)음극 기술을 적용해 음극 부피를 줄이고 양극재를 추가, 에너지 밀도를 세계 최고 수준인 900Wh/L까지 끌어올렸다.

2022년 수원에 국내 최초 전고체 파일럿 라인 'S라인'을 착공, 2023년부터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6500㎡ 규모의 이 시설은 전고체 배터리 전용 극판, 고체 전해질 설비, 신규 조립 공정을 모두 갖춘 인프라로 평가된다.

현재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샘플을 공급해 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며, 초기 피드백은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SK온은 내년 말까지 반고체 배터리 시제품 생산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며, 전고체 배터리는 2030년 상용화가 목표다.

SK온은 지난달 1일 'SK온 배터리연구원'을 'SK온 미래기술원'으로 개편한 바 있다. 미래기술원장에는 박기수 전 R&D본부장이 선임됐다. R&D 전략을 기반으로 SK온을 기술 주도 기업으로 성장시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에 뺏긴 주도권을 가져오고,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 업체들도 속도전에 돌입했다. CATL은 2027년 소량 생산을 시작했다. 2030년 대량 양산이 목표다. 최근 시험 생산한 샘플은 에너지 밀도 500Wh/kg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BYD도 2027년 시험 생산, 2030년 대량 생산을 계획 중이다.

■시장 판도 바꿀 '2027년'…상용화 가시화 전망은

전문가들은 2027년을 기점으로 전고체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의 주류 기술로 진입할 것으로 본다. 상용화가 본격화되면 △주행거리 700km 이상 △충전 속도 개선 △안전성 강화 △리콜·보험 비용 절감 등 효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와 소비자 불안 심리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핵심 해법이 된다.

다만 초기에는 생산 단가가 높아 고급차나 한정 모델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양산성 개선과 원가 절감을 통해 대중차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 경쟁은 사실상 일본·독일·한국·미국 4개 축이 형성하는 다자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며 "일본은 특허 우위, 독일은 대규모 양산 시스템, 미국은 스타트업 중심의 혁신 기술, 한국은 대기업·완성차 연합 전략이 강점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들은 배터리·완성차 협력을 바탕으로 조기 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며 "전고체 배터리야말로 전기차 경쟁의 최종전으로 향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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