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의 자율운항 연구 선박 '시프트 오토' [출처=진명갑 기자]](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8061_694932_144.jpg)
“하이 빅스비, 출항 준비해줘”
짧은 음성 명령이 떨어지자, 선박이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반응했다.
삼성중공업의 자율운항 연구선박 ‘시프트 오토(Shift Auto)’가 실제 음성 지시에 따라 스스로 항해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말하면 배가 움직이는 시대. 자율운항 기술의 미래가 더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EBN 산업경제>는 최근 경남 거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조선소를 찾아 시프트 오토에 직접 승선하고, 자율운항 기술의 현재와 진화 과정을 체험했다. 연구선에 오른 기자는 기술진의 설명과 함께 시연 과정을 지켜보며, 조선과 전자·IT 기술이 결합한 신기술의 실제 작동 모습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프트 오토는 자율운항 기술 실증을 위해 제작된 12인승 시험선이다. 선체 흔들림을 최소화한 카타마란 구조(두 개의 선체를 결합한 쌍동선형)를 적용해, 외관부터 일반 선박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우주선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기존 자율운항 선박이 장애물 식별이나 우회 경로 안내 등 제한된 기능에 머물렀다면, 시프트 오토는 설계 단계부터 자동 접·이안, 음성 기반 제어 등 다양한 자율운항 요소 기술이 통합돼 있다. 특히 음성 명령만으로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기능은 실증 범위와 기술 확장성 모두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보여준다.
![삼성중공업 관계자가 음성명령을 통해 선박 속도를 제어하고 있다. [출처=진명갑 기자]](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8061_694934_1735.png)
■ 자율운항의 뇌… GPU와 LLM이 움직인다
삼성중공업의 자율운항 시험선 ‘시프트 오토(Shift Auto)’에는 크게 선박 운항 시스템과 편의 기능 제어 시스템 두 가지 무인 기술이 적용돼 있다.
우선 편의 기능 제어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SmartThings) 기술이 도입됐다. 스마트폰 터치 조작은 물론, AI 스피커를 통한 음성 명령으로 선내 에어컨, 조명 등 각종 설비를 손쉽게 원격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선박의 진정한 핵심은 자율운항 기술에 있다.
시프트 오토에는 수동 조타장치도 탑재돼 있지만, “출항해줘”, “침로 120도로 변경해줘”, “엔진 풀 어헤드” 등 자연어 기반 음성 명령만으로 입출항, 항로 변경, 속력 조절까지 대부분의 항해가 자동으로 수행된다.
조타석에는 세 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선박 주변 영상과 속도 정보, 레이더 및 전방 영상, AIS 기반 항해 경로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항해 중 선박은 전방 카메라와 레이더 등을 통해 주변 선박이나 장애물을 감지하며, 별도 조작 없이도 회피 경로를 자동 설정해 안정적인 항로를 유지했다. 이는 자율운항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기술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날 시연에서는 레이더를 통해 가상의 선박이 출현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레이더 속 선박 출현을 확인한 시프트 오토는 스스로 판단해 항로를 변경하고, 회피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시프트 오토의 자율운항 시스템은 보안 설계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외부 네트워크와 완전히 분리된 폐쇄형 구조로, 온라인 접속 없이도 AI가 선박을 자율적으로 운항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선박 내부에는 고성능 GPU가 탑재돼 있으며, 대규모 언어모델(LLM) 을 통해 음성 명령을 해석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해 선박을 제어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자율운항은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실제 해양 환경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며 “AI와 IoT 융합을 통해 미래형 스마트십 구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가 스마트 띵스로 선박을 제어하고 있다. [출처=진명갑 기자]](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8061_694933_1447.jpg)
■ 고부가 선박 너머 ‘소프트웨어 수출’로
삼성중공업의 자율운항 기술은 단순한 기술 선도를 넘어, 글로벌 조선산업 재편 흐름과 맞닿아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급성장 중인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삼성중공업은 또 다른 미래 경쟁력으로 자율운항 기술 청사진을 기르고 있다.
시프트 오토는 12인승 규모의 소형 시험선이지만, 이 선박에 탑재된 자율운항 소프트웨어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은 시프트 오토 외에도 다양한 대형 선박 자율운항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3년에는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그린’호가 약 1500km에 달하는 남중국해 항해 실증을 마쳤고, 목포해양대학교 실습선 ‘세계로호’는 약 2800km에 이르는 필리핀 항로 자율운항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향후에는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자율운항 시스템 자체를 별도의 상업 제품으로 판매하는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하나 주목할 흐름은 한미 간 조선산업 협력을 기반으로 한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다.
미 해군은 오는 2054년까지 총 360여 척의 군함을 추가로 건조해 전체 해양 전력을 510척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약 130척은 무인 자율운항 함정으로 편성될 예정으로, 자율운항 기술의 필요성과 시장 잠재력을 방증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현재 방산 함정 분야에는 직접 진출하지 않았지만, 삼성그룹 전체로 보면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전자 및 IT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그룹의 기술 자산이 융합된 첨단 자율운항 조선사업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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