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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들에서는 여천NCC가 본업 부진과 파생상품 투자 실패, 과도한 배당 정책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을 짚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이 실적 부진의 책임을 놓고 벌인 '네 탓' 공방의 배경과 함께 과거 다른 합작사 대주주들의 갈등 사례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1999년 IMF 외환위기 직후 과잉 설비를 해소하기 위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구 대림산업 화학부문)이 각각 50%의 지분을 합쳐 출범한 여천NCC. 2017년 영업이익 1조원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불황이 닥치자 합작사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양사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가격'이었습니다. 여천NCC는 정유사에서 나프타를 사들여 기초원료를 생산하고 이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공급해왔습니다. 여천NCC의 지속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재된 가격으로 양측이 원료를 사가기로 합니다. 이를 통해 에틸렌의 경우 여천NCC로부터 한화는 70%를, DL은 30%를 안정적인 가격으로 공급 받아 왔죠. 이렇게 양측은 지난해까지 25년간 과거 계약서에 기재된 가격 산정식대로 원료를 사가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업황이 침체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특히 올해 단가 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시점이 도래하며 대주주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한화는 그동안 원료를 비싸게 사 왔으니 앞으로는 저렴하게 받겠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DL은 한화 측의 주장대로 계약할 경우 향후 여천NCC가 자생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 국세청이 DL 측과의 저가 거래를 문제 삼아 여천NCC에 1006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며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이에 한화는 "추징금의 96%가 DL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며 불공정 거래 관행을 지적하죠.
그러면서 "모든 제품을 시장가격에 따라 계약하자는 게 한화의 주장"이라며 "DL이 주장하는 것은 시가로 하면 전년 대비 DL이 손해를 많이 보게 되니 한화가 많이 가져가는 에틸렌은 시장가격보다 높게 가져가고, DL이 많이 가져가는 C4R1 등은 시장가격 대비 할인된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DL은 에틸렌 가격은 용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C4RF1은 시가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업계에서 C4RF1을 구매하는 기업은 DL케미칼이 유일하다는 근거와 함께 말이죠.
DL은 "(DL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여천NCC가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격으로 원료 공급 협상을 제안해 왔다"며 "반면 한화는 무조건 더 싸게 심지어 여천NCC의 공정한 이익을 깎아서라도 한화에만 유리한 조건을 고집해 왔다"고 비판합니다.
■ 자금 지원 방안 두고 뚜렷한 온도차
양측은 자금 지원 방안에서도 뚜렷한 온도 차를 보입니다. 지난 7월 1500억원 추가 자금 대여를 승인한 한화와 달리 DL은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입장차를 보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에 올 8월 여천NCC는 3100억원의 자금 부족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지난 8월 유상증자 결정 이후에도 DL과 한화는 연이어 상반된 입장문을 내며 공방을 지속합니다.
DL은 올 3월 DL과 한화가 각각 1000억원씩 실행한 증자를 언급하며 "당시 여천NCC로부터 '증자가 진행되면 연말까지 현금 흐름상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상세한 설명 없이 양 주주사에 1천억원 이상의 증자, 지급보증 또는 대여를 요청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또 "'거짓 또는 심각한 경영 부실' 어느 쪽이든 주주와 시장을 기만한 행위"라며 "아무런 원인 분석 없이 증자만 반복하는 것은 여천NCC 경쟁력에 해악을 끼치는 '묻지마 지원'이며 이는 공동 대주주로서 무책임한 모럴 해저드이자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합니죠.
이에 곧장 한화도 반박합니다. 한화는 "DL은 25년 동안 여천NCC를 통해 2조2000억원 배당금을 챙기고도 1500억원 지원을 거부하다 부도 위기를 일으켰다"며 "한화는 국세청 과세와 석유화학 시장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시가 계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으나 DL이 이를 반대해 원부원료공급계약이 체결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DL이 공급받는 제품에 대해 시장가격으로 변경을 반대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위험에도 부당한 이익을 지키려는 것"이라면서 "한화는 저가공급으로 법인세가 추징된 가격 조건을 유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해 시가가 반영된 조건으로 거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하죠.
이렇듯 양측의 첨예한 갈등은 결국 부도 시한이 임박하자 DL측이 긴급 이사회를 열고 여천NCC에 1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임시 봉합하게 됩니다. 양사가 총 3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여천NCC의 급한 불을 끄는 데 합의한 것이죠. 다만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저 당장의 부도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까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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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NK-BP 지분 매각 시나리오 사례 따를까
여천NCC의 사례처럼 대규모 합작투자 기업이 경영 위기에 직면했을 때 파트너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갈등이 폭발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과거 영국과 러시아가 손 잡고 설립한 'TNK-BP' 역시 유사한 과정을 겪었는데요.
TNK-BP는 지난 2003년 영국 에너지 기업 브리티 페트롤리엄(BP)이 61억5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7조3000억원)를 투자해 러시아의 튜멘 석유회사(TNK)와 지분을 50%씩 나눠 설립한 영국·러시아 합작 에너지사입니다.
BP와 러시아 주주(AAR)가 지분을 50%씩 가진 구조로 탄생했지만 훗날 러시아 주주들이 BP가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하면서 경영권 갈등을 빚게 됩니다. 더욱이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하자 러시아 당국이 2005년쯤부터 외국기업에 내준 자원개발권의 환수를 시작하기 시작, 양측의 갈등은 한층 격화됩니다.
러시아 투자자가 대부분인 TNK 측이 코빅타 가스전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을 이유로 영국인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더들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TNK-BP 경영권 장악을 시도합니다. 이에 더해 러시아 당국이 더들리 CEO의 비자 갱신을 거부하면서 더들리 CEO가 러시아를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양측의 대립이 양국의 외교전으로까지 확산하자 결국 BP가 2013년 로스네프트에 자회사 TNK-BP를 매각하고 그 대가로 18.5% 지분을 추가 취득하며 상황은 마무리 됩니다.
마침 국내 2, 3위 에틸렌 생산 업체인 롯데케미칼과 여천NCC의 '나프타분해설비(NCC) 빅딜' 추진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양사의 설비 통합이 이루어지면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법인이 탄생할 가능성이 생긴거죠. 하지만 여천NCC가 50%씩 지분을 가진 합작사인 점을 고려할때 통합 과정에서 숱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 여천NCC에서 30여년을 근무했다던 한 직원의 진심 어린 바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말 그대로 여천NCC에 본인의 모든 청춘의 받쳤다는 그 였죠.
"이번 갈등은 실무자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양측의 오너분들이 직접 나서 큰 타협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 결국에는 이들이 직접 나서 마주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과연 여천NCC가 갈등을 봉합하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