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생성이미지.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6925_693635_5639.png)
한때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치고 직원 평균 연봉 1위에 올랐던 회사가 있습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속에서 탄생한 석유화학 업계의 스타 '여천NCC'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산업계는 정부의 강도 높은 산업 구조조정에 잇단 '빅딜'을 추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DL케미칼(구 대림산업 화학부문)과 한화솔루션이 각각 50%의 지분을 합쳐 '규모의 경제'를 갖춘 여천NCC가 탄생했죠.
기대 속에 출범한 여천NCC는 2016-2017년 석유화학 산업이 '슈퍼사이클'을 만나면서 최전성기를 맞습니다. 2017년에는 영업이익이 무려 1조124억원을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을 달성합니다. 영업이익률과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은 각각 18.69%, 20.59%에 달하죠. 대개 장치산업인 석유화학 특성상 영업이익률이 5% 수준만 돼도 양호한 것임을 고려할 때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과였죠.
여천NCC가 역대급 성적을 거둔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 특유의 사업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여천NCC는 핵심 원료 '나프타'를 열분해 한 뒤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과 같은 석유화학 기초 원료를 생산하는 나프타분해공장 전문 업체입니다. 사업 특성상 원유와 주원료인 나프타의 가격 변동이 회사 수익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국제 유가와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원료비 부담이 늘어나 수익성은 악화되고,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원가 부담은 줄어 수익성 개선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런 점에서 2016년과 2017년은 최고의 실적을 올리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미국 셰일오일 증산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진 덕분이죠. 2016년과 2017년 연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4달러 수준의 저유가 기조를 유지한 덕에 나프타 가격은 안정됐고 이는 낮은 매출원가로 이어졌습니다.
때마침 중국발 수요 증가로 인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마저 맞물리며 그야말로 최고의 사업 환경이 조성됩니다. 저유가 기조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안정된 데다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제품 가격 역시 대폭 오릅니다. 2017년 여천NCC의 에틸렌과 부타디엔 수출 가격은 톤당 1032달러, 1549달러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올 상반기 에틸렌(799달러), 부타디엔(1216달러) 대비 22-29%가량 높은 가격입니다.
당시 물밀듯 밀려오는 수요에 공장도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2017년 여천 NCC의 1, 2, 3공장 평균 가동률은 101~104%에 달하는데요. 국제 유가 하락으로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안정된 데다 중국발 수요 증가로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나들며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은 겁니다.
이렇듯 여천NCC는 IMF 외환위기 이후 산업 구조조정의 상징적 성공 사례로 남는 듯했으나 영광의 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출처= ]](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6925_693645_1558.png)
■ 배당 잔치에 취해 미래를 잊다…2018년 배당성향 162%
몰락한 기업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환희의 순간 위기를 감지하지 못해 패착에 이른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잘 벌리고 주머니에 현금이 두둑하니 지출과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싶어 하는 욕망에 사로 잡히곤 하죠. 돈이 잘 벌릴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거나 재무 구조를 탄탄히 다져야 하는 이유죠. 하지만 여천NCC는 호황기 시절 그야말로 '오늘만 사는' 것처럼 막대한 배당 잔치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여천NCC는 1999년 말 설립 이후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08년을 제외한 17년 동안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매년 배당금을 지급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2003년 700억원 수준이던 배당금은 2016년 4700억원, 2017년 2600억원까지 늘더니 급기야 2018년에는 7400억원까지 오르며 역대급 수준을 기록합니다. 여천NCC 설립 이후 발생한 누적 배당금만 4조4000억원으로, 단순 계산 시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은 각각 2조2000억원씩 배당을 받아간 셈입니다.
2003년 49% 수준이던 여천NCC 배당성향은 2018년 162%, 2020년 140%까지 오르면서 재무 상태에 부담을 안깁니다. 배당성향이 100%를 넘는다는 건 회사가 일 년 동안 번 순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배당금으로 지급했음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번 돈 보다 밖으로 지출된 씀씀이가 훨씬 크다는 뜻이죠.
심지어 2018년에는 시설 투자와 배당금으로 나간 돈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훌쩍 뛰어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그 결과 당해 연말 현금 잔액은 고작 132억원까지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여천NCC 제1 사업장 [출처=여천NCC]](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6925_693655_4729.jpg)
전문가들도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기업이라면 보통 호황기에 현금을 어느정도 쌓아두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균형 있게 집행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런 장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거죠.
김창수 연세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배당은 직원들 월급 주고 세금 내고 이자 갚은 뒤 맨 마지막에 받아가는 것이 맞다"며 "공동 대주주(한화와 DL)가 단순히 자금이 필요해 배당을 필요 이상으로 받아간 것은 다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회사 배당성향이 100%를 넘긴 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의문을 던집니다. 차입금과 같이 사실상 '빚으로 배당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여천NCC가 배당을 지급하던 시기와 전후로 차입금은 꾸준히 증가합니다. 회사 차입금은 2017년 3661억원에서 2018년 4463억원, 2019년 5732억원, 2020년 1조1103억원까지 늘어난 데 이어 2021년 1조5424억원, 2022년 1조8453억원 수준에 달합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는 8954억원의 차입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8790억원을 들여 공장 증설을 강행하게 되고 회사 현금은 급속도로 바닥나기 시작합니다.
신용평가기관도 여천NCC의 행보를 두고 우려의 메시지를 던져왔습니다. 한국신용평가가 작년 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여천NCCC가) 2021년까지 주주사에 대한 배당 부담, NCC·BD 증설 등으로 차입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결국 안팎의 우려대로 방탕한 배당 정책을 앞세운 여천NCC의 현금흐름은 2017년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의문이 남습니다. 여천NCC는 조만간 업황 침체가 올 것이란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요?
■ "위기 온다"는 경고에도 멈추지 않은 배당
사실 2017년 이후 업황 침체가 들이닥칠 것이란 전망은 이미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셰일가스 기반 설비들이 완공되는 2018년부터 고난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죠.
놀라운 점은 여천NCC 경영진 역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분명히 인지했다는 겁니다. 여천NCC가 2017년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살펴볼까요.
당시 사업보고서에는 "2018년에는 유가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과 북미 신규 설비 본격 가동으로 스프레드가 축소될 것"이라고 명확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사는 이러한 불확실한 대외 여건 속에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이어가기 우해 부산물 고부가가치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무재해 안정조업, 에너지 절감 및 생산성 향상에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라는 내용을 덧붙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사업보고서 어디에도 '배당을 줄이겠다'는 성찰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결국 무리한 배당 정책은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3위 기업인 여천NCC에게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전망대로 2019년 하반기부터 업황이 본격적으로 악화하기 시작했고, 2022년 대규모 설비 사고까지 겹치면서 회사는 연속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부채비율은 2022년 217.88%에서 올 상반기 338.04%까지 치솟으며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여천NCC는 이제 부도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호황기 시절,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배당 잔치를 벌였던 여천NCC. 그들의 사례는 기업 경영에서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로 남을 기로에 섰습니다.
[여천NCC 신화의 몰락]② 시리즈 이어서…
- [석유화학 구조개편] 화학 10개社 협약…370만톤 설비감축 추진
- 여천NCC, 3000억원 규모 지원 확정…부도 위기 넘겨
- [국제유가] 서방, 이란 제재 강화 속 공급 우려…WTI 65.59달러
- [여천NCC 신화의 몰락]②나프타에 기댄 태생적 한계…유가에 웃고 울다
- [여천NCC 신화의 몰락]③악수가 된 파생상품의 덫
- 산은, 여천NCC 대주주에 "대여금, 필요시 자본 전환"압박
- [여천NCC 신화의 몰락]④지리한 네 탓 공방…떠오르는 '빅딜' 희망
- DL케미칼, 알짜 계열사 '카리플렉스' 매각 검토
- DL케미칼, 여천NCC 주식 1500억원어치 추가취득…지분율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