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제2사업장 전경 [출처=여천NCC]
여천NCC 제2사업장 전경 [출처=여천NCC]

지난 시리즈에서는 여천NCC가 과도한 배당으로 스스로 재무 부담을 키운 모습을 짚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여천NCC의 고정된 사업 구조가 어떠한 위기를 불러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고 직원 평균 연봉 1위에 빛나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여천NCC.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기초 유분 단일 사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국제 유가 변동에 취약한 경직된 사업 구조에 있습니다.

여천NCC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핵심 원료 나프타(Naphtha)를 열분해 한 뒤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기초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나프타분해공장 전문 업체입니다. 사업 구조 특성상 원유와 나프타 가격에 수익이 좌우될 수밖에 없죠. 유가가 떨어지면 원가 부담이 줄어 수익이 늘지만, 유가가 오르면 원료비가 급등해 수익성은 곤두박질치죠. 유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운명이었던 겁니다.

여천NCC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2017년을 살펴 볼까요. 당시 회사의 원재료 매입액에서 나프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88%가량에 달했는데, 브렌트유 연평균 가격이 배럴당 54달러에 머물면서 원가 부담을 크게 낮췄습니다. 그 결과 여천NCC는 1조12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원재료 나프타 가격과 직결되는 국제유가가 낮은 가격을 형성하면서 제품 판매가와 원가 스프레드가 최대로 벌어지며 수익성이 극대화된 좋은 사례죠.

하지만 부도 위기를 겪었던 올해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국제유가였습니다. 상반기 브렌트유 가격은 2017년보다 25%가량 높은 68달러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지난 3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OPEC+ 8개국이 하루 22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2분기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한 영향이 컸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 회복 기대감마저 더해지며 반기 내내 고유가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고유가에 따른 원가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여천NCC는 결국 올 상반기 1566억원의 영업손실이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여천NCC의 원재료 매입액에서 나프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88%)과 올 상반기(90%)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나프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고스란히 독이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2017년 여천NCC의 원재료 매입 비중. [출처=여천NCC 제19기 사업보고서]
2017년 여천NCC의 원재료 매입 비중. [출처=여천NCC 제19기 사업보고서]

■ 원료 포트폴리오 유연성의 차이…업황 침체에도 수익 방어한 FPC

업황이 침체했다고 모든 기업이 휘청거린 것은 아닙니다. 대만의 대표 석유화학사인 '포모사 플라스틱(FPC)'가 대표적인데요. 여천NCC가 올 상반기 마이너스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대규모 손실을 피하지 못한 반면 같은 기간 포르모사 플라스틱은 13억 대만 달러(약 5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흑자를 유지했습니다. 

양사의 성패를 가른 핵심은 '원료 포트폴리오의 유연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프타에 의존하는 여천NCC와 달리 FPC는 액화석유가스(LPG), 에탄 등 다양한 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유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 원료의 비중을 높여 원가 부담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죠. 여천NCC가 휘발유만 넣고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면 FPC는 연료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하이브리드'에 가까웠던 겁니다.

양사가 생산 능력에서 규모의 차이를 보인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석유화학 산업은 소위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한 장치 산업군에 속합니다. 생산 규모가 클수록 단위당 고정비는 감소해 원가 경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구조입니다.

지난해 기준 FPC의 에틸렌 연간 생산 능력은 약 293만5000톤을 기록, 여천NCC(228만5000톤) 보다 약28% 높았습니다. 업황 침체가 이어진 상황에서 FPC의 높은 생산력이 고정비 부담은 줄이고 손익분기점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겁니다.

■ 사업 영역 넓히는 경쟁사…변화 없는 여천NCC의 안일함

여천NCC의 또 다른 패착은 호황기에 변화를 주저했다는 점입니다. 국내 경쟁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며 미래를 대비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죠.

일 예로 LG화학은 2016년 팜한농을 인수하며 농화학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힌 데 이어 이듬해 곧장 LG생명과학을 흡수 합병하며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사업 영역을 농화학과 바이오 부문으로 확장하면서 화학 산업 불황에 대비한 것이죠.

롯데케미칼 역시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직계열화와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이를 위해 2016년 당시 삼성SDI 케미칼 부문(사명 롯데첨단소재)과 삼성정밀화학(사명 롯데정밀화학)을 인수해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하지만 여천NCC는 여전히 나프타 기반의 기초 원료 생산 방식에만 안주했습니다. 향후 석유화학 업황 침체 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사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죠.

심지어 회사는 2018년 제19기 사업보고서를 통해 스스로 "수직계열화가 미약하다"고 한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처럼 경직된 사업 구조는 2022년 이후 시장 불황의 파고를 그대로 맞는 원인이 됐습니다. 

[출처=여천NCC 제19기 사업보고서]
[출처=여천NCC 제19기 사업보고서]

■ 바꾸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천NCC가 과거 원료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을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마냥 비판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석유화학 산업 특성상 한번 구축한 대규모 설비와 공정 과정을 새로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또 호황기 시절 이어진 저유가 환경이 나프타를 핵심 원료로 쓰는 국내 기업에 최적의 사업 환경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이 "과거 우리 경기가 좋았을 때는 유가가 굉장히 낮았던 시기로 에탄을 쓰는 것 자체가 메리트가 없었다. 최근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나 일부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한 이유입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석유화학은 특성상 장치 산업 성격이 강한 만큼 원료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일이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다만 통화 말미, 그는 나프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여천NCC가 지닌 태생적 한계에 대한 아쉬움도 내뱉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말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20여년 전 선택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학사가 공정을 선택하고 설비를 선택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거대 장치산업 산업인 만큼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현재 여천NCC는 범용 사업에서 스페셜티 전환에 실패한 사례가 됐다."

[여천NCC 신화의 몰락]③ 시리즈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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