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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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 업계가 중동 무대에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총 5조5000억원 규모의 대형 EPC(설계·조달·시공) 프로젝트를 따내며, 글로벌 EPC 시장에서 'K-건설'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번 수주가 주목받는 데는 단순히 계약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카타르와 이라크라는 중동 주요 산유국에서 전력 인프라와 에너지 인프라 건설을 동시에 맡았다는 점, 그리고 발주처가 설계부터 조달,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한국 기업에 전적으로 위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최근 카타르 국영에너지기업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2000MW급 듀칸 태양광 발전소 EPC 프로젝트를 단독 수주했다. 수주액은 1조4643억원으로,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수행하는 태양광 EPC 사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이 발전소는 여의도의 9배에 달하는 27㎢ 대지에 조성되며, 태양광 패널만 274만장이 투입된다. 2030년 준공되면 약 7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로, 카타르 전체 전력 수급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삼성물산은 태양 추적식 트래커와 고온 대응형 인버터를 적용해 발전 효율을 높이고, 사막 특유의 혹독한 기후에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특화 설계를 진행한다. 업계는 이번 수주를 통해 삼성물산이 카타르 전체 태양광 발전 용량의 80% 가까이를 책임지게 됐다. 

김성준 삼성물산 ES영업본부 부사장은 "카타르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아온 신뢰가 이번 수주로 이어졌다"며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EPC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이라크에서 하루 500만배럴 용수 생산이 가능한 해수처리 플랜트 EPC 계약을 따냈다. 수주 규모는 30억달러(약 4조원)로, 현대건설이 2023년 준공한 카르발라 정유공장 이후 최대급 프로젝트다.

이번 WIP(Water Infrastructure Project)는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이라크 국영 바스라석유회사, 카타르에너지가 공동 투자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남동쪽으로 500㎞ 떨어진 코르 알 주바이르 항구 인근에 조성된다.

현대건설은 EPC 전 과정을 맡아 49개월간 공사를 수행한다. 완공된 시설에서 생산되는 용수는 웨스트 쿠르나, 루마일라 등 주요 유전의 원유 증산에 직접 사용된다. 이는 사실상 이라크의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국가 프로젝트로, 발주처가 한국 건설사를 선택한 배경에는 현대건설의 중동 플랜트 경험과 품질 관리 능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번 수주는 전쟁과 코로나 같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 오랜 기간 책임감 있게 주요한 국책 공사를 수행하며 경제성장에 기여한 현대건설에 대한 굳건한 신뢰감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라며 "향후에도 이라크에서 지속적으로 발주될 것으로 전망되는 정유공장, 전력시설, 주택 등 다양한 분야의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이번 수주 합계액은 5조4643억원으로, 지난달 국내 건설사들의 전체 해외 수주액(5조5003억원)에 맞먹는다. 사실상 단 두 건의 프로젝트로 한 달치 해외 실적을 채운 셈이다. 

두 프로젝트는 모두 EPC 방식으로 진행되며, 이는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조달·시공 전 과정을 책임지는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발주처가 한국 기업을 신뢰해 엔지니어링부터 조달 네트워크, 현장 시공까지 일괄 책임을 맡겼다는 점은 한국 건설업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다.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사업은 전통적으로 미국·유럽 기업이 강세를 보였지만, 최근 중동 지역에서는 한국·중국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대규모 플랜트 건설 경험과 안정적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성과가 사우디 네옴시티, UAE 재생에너지 단지 등 중동 대형 프로젝트 입찰 경쟁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신재생에너지와 석유·가스 인프라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동시에 성과를 낸 점도 주목된다. 한쪽에서는 태양광, 다른 한쪽에서는 원유 증산을 위한 플랜트를 건설하며 '에너지 패러독스' 속 기회를 동시에 포착했다는 것이다.

한 건설산업 전문가는 "전 세계가 탈탄소 흐름으로 가고 있지만, 동시에 산유국은 석유 생산을 늘려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며 "한국 건설사가 신재생과 전통 에너지 인프라 모두에서 EPC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건 시장에서 입지를 크게 넓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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