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건조한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출처=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건조한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출처=한화오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이 들썩이며 신조 발주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다. 최근 운임이 하루 1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2년 반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장기 침체에 빠졌던 탱커 시장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운임 랠리에 힘입어 선주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되자 조선 빅3(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는 유조선 수주를 잇달아 따내며 발주 확대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23일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최근 VLCC 평균 운임은 하루 9만 달러를 넘어섰다. 일부 항로에서는 10만 달러선까지 치솟는 등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와 미국 전략비축유(SPR) 대규모 방출 당시 수준에 맞먹는 기록이다.

운임 급등 배경에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증산이 이어지고, 러시아산 원유 제재 강화로 대서양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장거리 항로가 늘었다.

서아프리카·미국 걸프 원유의 아시아향 수송 증가로 톤마일 수요가 확대됐고, 노후 선박 증가와 맞물려 공급 부족이 두드러졌다. 최근에는 북해산 원유가 중국으로 수송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여기에 제재 명단에 오른 '그림자 선단' VLCC가 170척 이상으로, 전체 선대의 약 20%가 가용 시장에서 제외됐다. 중국 선박에 대한 미국의 항만 규제도 시장 비효율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단기 반짝 장세가 아니라 구조적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운임 강세는 곧바로 발주 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조선 빅3는 중국이 사실상 주도해 온 유조선 시장에서 잇달아 성과를 올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달 초 그리스 에발랜드쉬핑으로부터 약 2422억 원 규모의 수에즈맥스급(15만7,000DWT)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그리스 뉴쉬핑과 건조의향서(LOI)를 체결, 확정 2척과 옵션 2척을 포함한 수에즈맥스급 4척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화오션은 최근 그리스 차코스 에너지 내비게이션(TEN)으로부터 VLCC 1척을 추가로 확보했다. 지난 7월 말 계약한 2척에 이어 연속 수주에 성공하면서, 올해만 총 13척의 VLCC 물량을 확보했다.

중국 조선소가 주도하던 유조선 발주 시장에서 한국 조선소의 점유율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유조선은 LNG선이나 컨테이너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아 중국이 대부분을 장악해왔지만, 최근 운임 급등으로 선주사들의 발주처 다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선박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8월 말 기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신조선가는 척당 1억2600만 달러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운임 랠리로 신조 투자 매력은 높아졌지만, 글로벌 발주가 줄어든 상황에서 조선소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담보되는 선종에 도크 효율을 맞추는 것이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유조선은 최근 수년간 발주가 제한적이었는데, 운임 급등으로 노후 선박 교체 수요와 함께 신조 문의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발주가 대세로 이어질지는 운임 지속성과 친환경 전환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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