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은 저울과 같다. 한쪽이 무거워지면 다른 쪽은 반드시 들린다.
지금 우리 소비 시장의 저울은 이미 기울어 있다. 가격이 오른 이유에 생산비나 수급구조가 꼽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 불균형은 자연스러운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왜곡의 흔적이다. 시장경제의 자율은 공정의 추가 제자리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 추를 잃은 시장은 더 이상 '자유'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가격 급등을 지적하며 "정부가 통제 역량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추석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자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 이후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잇따랐다. "시장 경제는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자유시장론이 맞선 것이다.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건 시장의 자유를 억누르는 처사가 맞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시장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
생산비가 안정돼도 소비자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특정 품목의 가격 상승이 도미노처럼 번진다. 시장이라는 저울의 축이 이미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농축산물과 식료품 시장은 이미 대형 유통업체와 일부 도매업체가 좌우한다. 가격 형성의 중심에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없다. 유통 단계에서 붙는 과도한 마진이 시장의 '기울어진 저울'을 만들어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시장 자율을 지키는 게 아니라 왜곡된 불공정을 방치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은 통제가 아니라 교정이어야 한다.
가격 담합을 조사하고,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하고, 물류비 절감과 비축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아니다. 기울어진 시장의 저울에 '공정의 추'를 다시 올려놓는 일이다.
시장경제의 자율은 경쟁이 공정하게 작동할 때만 의미가 있다. 강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약자가 따르는 구조라면 그건 자율이 아니라 종속이다.
물가 안정은 정부의 통제나 시장의 자율 중 하나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시장은 단기적인 조정 기능을 담당하고 정부는 장기적인 안정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시장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스스로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지만 시장의 균형은 공정의 추가 잡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시장 교정이다. 그것이 시장경제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