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외국인 투자자의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힘입어 3600선을 돌파한 직후 원·달러 환율 급등과 미국 증시가 급락하는 등 대외 악재를 맞았다. 갑작스런 변수에 코스피 역시 상승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 따른 여파가 길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3분기 실적 시즌을 맞아 주도주 위주의 대응을 조언한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이날 장 초반 2% 이상 급락하며 약세를 보였다. 지난 10일 3617.86까지 올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나 1거래일 만에 상승분을 반납하게 됐다.
장 초반 코스피 약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영향이다. 개인이 매수 우위를 보이고 있으나 외국인 매도세에 코스피 지수는 하방압력을 계속 받는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러시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먼저 지난 주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로 불거진 미중 무역갈등이 미국 주식시장을 뒤흔들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통제를 비판하면서 대규모 대중 관세 인상을 예고하고 이달 말 예정됐던 APEC 회의에서의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11월부터 대중 관세를 100%로 인상하고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AI 반도체주 등 빅테크를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S&P500 지수는 2.71% 하락 마감했고, 나스닥 지수는 3.56%나 급락했다. 특히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6.32%나 폭락했다. 미국 CNBC 방송 등 외신에서는 M7으로 불리는 7개 대형 기술주의 시총이 하루만에 7700억 달러(1101조원)가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국내 증시를 이끈 종목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빅테크에 대한 투심 악화는 국내 반도체 업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외국인은 이달 2일과 10일 국내 증시에서 각각 3조1933억원, 1조3026억원을 순매수했다. 이 중 삼성전자 2조3221억원, 삼성전자우 3424억원, SK하이닉스 3377억원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바 있다.
하지만 13일 오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장 초반 외국인 매도세에 각각 장 중 3%, 4% 이상 하락했다.
환율도 외국인 투자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1434.0원까지 오르며 지난 5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98.73으로 다소 하락했음에도 원화 가치의 약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미 3500억 달러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가 당선되면서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절하된 것이 원화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달러 대비 위안화의 약세도 원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안화 약세는 신흥국 통화의 동반 약세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에 연동돼 신흥국 지수가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위안·달러 환율이 7.1~7.3위안 부근에서 신흥국 통화 전반의 약세 압력과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단기 충격 불가피하지만 오히려 분할 매수 기회”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조정을 매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만에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중국에 대해 걱정하지말라”며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중 갈등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 당시 갈등과 협상을 수차례 겪은 내성이 생긴 만큼 주가 충격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중 관세 갈등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 원·달러 환율 상승세도 진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미국 셧다운 장기화 조짐으로 강달러 압력은 다소 완화되고 있다”며 “미중 갈등에 따른 위험회피가 단발성에 그치면 원·달러 상승세도 진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준우 교보증권 연구원도 증시 모멘텀 훼손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의 증시 과열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증가하고 있으나 고평가를 논하기에 이르다”며 “원·달러 추세는 상승쐐기형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상승쐐기형 패턴은 하단을 돌파하며 하락을 암시하는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스피는 주가수익비율(PER) 밴드 11배를 강하게 돌파한 후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도 역사적 상단 저항선을 돌파했다”며 “밸류에이션 밴드 측면에서 역사적 상단 저항선을 보수적으로 고려해도 코스피 추가 상승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종목 선별의 중요성도 당부하고 있다. 중요한 매크로 지표 확인이 어려운 만큼 실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지표 부진이 확인되고 있는데 시장 영향력이 큰 지표도 셧다운으로 발표가 지연돼 현재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워 지수 고점 국면에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며 “이런 때일수록 실적이 양호한 주도주에 더욱 집중해야하고, 현재 한국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IT업종에 대해 비중을 줄일 때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단기 충격을 분할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선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오는 14일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 발표 후 단기 재료 소멸 인식으로 반도체뿐만 아니라 코스피 전반에 걸친 차익실현 물량이 출회될 수 있지만 메모리 업황 본격 턴어라운드 전망은 유효한 만큼 수급 변동성을 분할 매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