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네이메헌에 위치한 소재 반도체기업 넥스페리아 빌딩. [출처=연합뉴스]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위치한 소재 반도체기업 넥스페리아 빌딩. [출처=연합뉴스]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기업이 인수한 자국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해 비상조치를 발동하며 직접 경영 통제에 나섰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유럽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12일(현지시간) 넥스페리아의 지배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며 '상품 가용성 법'을 사상 처음으로 발동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은 국가 비상상황 시 핵심 산업의 생산·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번 조치로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은 넥스페리아 이사회 결정의 실행을 막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으며, 회사는 향후 1년간 정부 승인 없이 매각·합병·인사 등 주요 경영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는 사실상 자산 동결에 준하는 강력한 제재로 평가된다.

경제부는 "넥스페리아의 내부 거버넌스와 행위에 심각한 결함이 확인됐다"며 "핵심 기술과 역량의 연속성이 위협받고 있어 국가 및 유럽 경제 안보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본사를 둔 반도체 제조사로, 과거 필립스 반도체의 표준 제품 사업부가 분리돼 2017년 설립됐다. 이후 2019년 중국 기업 윙테크(聞泰科技)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모회사 윙테크로 핵심 기술이 이전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암스테르담 항소법원은 윙테크 창립자이자 넥스페리아 집행이사였던 장쉐정(張學政) 회장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독립 이사를 선임해 경영을 감독하기로 결정했다.

또 넥스페리아의 주식 대부분은 법원이 지정한 인사가 수탁관리하도록 명령했다. 다만 회사의 일상적 생산활동은 계속된다.

윙테크는 미국 상무부의 무역제한 명단(엔티티 리스트)에 올라 있는 기업으로, 미 정부는 이 회사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첨단기술 활용 기업”으로 분류했다.

네덜란드의 이번 조치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대중 수출 금지에 이어, 유럽이 미·중 기술 갈등에서 미국 측 입장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FT는 "첨단 기술 접근을 둘러싸고 서방과 중국 간 갈등이 유럽에서도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윙테크는 상하이 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이번 결정은 지정학적 편견에 따른 과도한 간섭이며, 시장경제 원칙과 공정 경쟁, 국제무역 규범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적 구제책을 검토 중이며, 정부 부처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린젠 대변인도 "국가 안보 개념을 일반화해 특정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에 반대한다"며 "중국은 자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넥스페리아는 "모든 현행 법률과 수출 통제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네덜란드 조치가 알려진 직후 상하이 증시에서 윙테크 주가는 10% 급락해 한 달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