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출처=연합]
LH.[출처=연합]

정부가 주택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37만가구 공급을 맡겼지만, 정작 기관 리더십 공백은 장기화되고 있다. 전임 사장이 이미 사퇴했고 부사장 임기도 다음 달이면 끝나지만,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개최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전례상 임추위 구성부터 선임까지 두 달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 수장은 연말이나 내년 초께 취임할 가능성이 크다. 핵심 공급 기관의 수장 부재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주택공급 드라이브도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전임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달 초 사의를 표명했지만, 아직 사표가 정식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을 이끌고 있다. 이 사장은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로 정권 교체 이후 교체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후임 절차가 지연되면서 조직 내 불확실성만 커지는 상황이다.

이한준 사장 부재 시 직무를 대행할 이상욱 부사장의 임기 역시 내달 12일 종료를 앞두고 있어 11월 이후에는 사실상 사장과 부사장이 모두 공석이 된다. 여기에 내년 초에는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임기를 마칠 예정이어서 LH 리더십 전반이 동시에 공백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새 수장이 아무리 빨라도 연말 이후에야 취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감사 일정이 10월 말까지 이어지는 데다, 공모 절차를 위한 임추위 구성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실제 공모 공고는 11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사 검증과 대통령 재가까지 고려하면 내년 초 취임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출처= LH 홈페이지, 각색]
[출처= LH 홈페이지, 각색]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는 임추위 구성에서 시작된다. 임추위는 신임 사장 공모와 서류 심사, 면접 등을 주관해 후보군을 압축하고, 이를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 추천한다. 공운위가 후보를 의결하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 재가를 거쳐 임명이 완료된다. 이 전 과정을 마치는 데는 통상 두 달가량이 소요된다.

전임 이한준 LH 사장 역시 2022년 9월 임추위가 꾸려진 뒤 1순위 후보로 추천됐고, 약 두 달이 지난 11월에서야 선임이 확정됐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정이 반복될 경우 새 수장은 빠르면 연말, 늦으면 내년 초에야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핵심 공급기관의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부 정책 추진은 물론 내부 의사결정 체계에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공급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조직이 장기간 대행 체제로 운영되다 보니 내부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효율도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력 유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200명이 회사를 떠났으며, 이 중 근속 10년 이하 젊은 인력이 130명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반면 인력 충원은 제자리걸음이다. LH가 최근 3년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인력 증원은 대부분 반려됐고, 올해 승인된 인력도 요청 대비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정부가 공공주택 공급 방식을 LH 직접 시행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업무량은 급증했지만, 정작 ‘일꾼’이 줄어드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리더십과 인력 공백은 정부의 주택공급 로드맵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LH는 공공주택뿐 아니라 도시개발, 신도시 조성 등 핵심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사장 공석이 이어지는 동안 주요 사업의 집행과 신규 승인 절차가 사실상 멈춰 있다. 내부에서는 "결재권자가 부재해 사업 일정이 꼬이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협력사들도 신규 계약 진행이 늦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은 이러한 공백이 길어질수록 정부의 공급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특히 공급 목표의 상당 부분이 LH의 직접 시행 사업에 묶여 있는 만큼, 내부 리더십 회복과 인력 안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다.

내부 관계자는 "공공주택 공급의 주체인 LH가 의사결정을 제때 하지 못하면 정부 공급 계획도 속도를 잃게 된다"며 "사장 공백이 길어질수록 현장에서는 결재 지연, 사업 일정 차질, 협력업체 계약 보류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사업은 속도보다 연속성이 중요한데 지금은 그 연속성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 확대를 외치면서도 정작 핵심 기관의 인선과 인력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리더십 공백과 인력 유출이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급 목표 37만가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숫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수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정책 추진력 저하가 불가피하고, 이 공백의 비용은 결국 국민의 주거 불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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