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단지. [출처=EBN]](https://cdn.ebn.co.kr/news/photo/202510/1681194_698579_358.jpg)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 해법을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직접 참여하는 도심 공공복합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속도와 규모를 강조하는 반면, 서울시는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과 임대시장 활성화를 앞세워 자율적 공급 확대를 지향한다. 표면적으로는 대립 구도가 선명하지만, 공급 확대라는 목표만큼은 일치한다는 점에서 공존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신속통합기획 2.0'을 발표하며 정비사업 속도전에 나섰다. 인허가 절차 간소화, 협의·검증 신속화, 이주 촉진을 통해 평균 18.5년이 걸리던 정비사업 기간을 12년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기존 1.0이 계획 수립 단계에 집중됐다면, 2.0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착공 단계까지의 병목을 뚫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 주택공급의 해법은 민간”이라며 “강남3구를 비롯한 핵심 지역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는 1일 '등록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공급 절벽에 직면한 민간임대시장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조치다. 오 시장은 “민간임대 규제와의 전쟁에 나서겠다”며 정부의 대출 제한·보증보험 강화 기조를 비판했다. 소규모 오피스텔 접도 조건을 완화하고,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을 축소해 개발 가능지를 확대했다. 또 AI 기반 전세사기 위험 분석 리포트를 도입해 임차인 안전망을 강화하고, 민간임대리츠 출자 지원과 대출이자 보전을 통해 금융지원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정부는 공공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다. 국토교통부는 LH 등 공공기관 주도의 도심 공공복합사업을 통해 향후 5년간 수도권에 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저층 주거지에는 법적 상한의 1.4배, 최대 700%까지 용적률을 적용하고, 주민대표회의 관리·감독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해 갈등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용적률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이다. 서울시는 도시 스카이라인, 일조권, 동 간격 등을 이유로 500% 상한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복합사업에만 더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이미 신속통합기획이나 모아타운을 추진하는 민간 사업자들이 역차별을 호소할 수 있다. 결국 정책의 성패는 사업성 확보 여부에 달려 있는 만큼, 용적률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불가피하다.
양측의 시각차는 공급 주체를 바라보는 철학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속도와 대규모 공급을 위해 공공 주도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민간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임대시장 접근법에서도 갈린다. 서울시는 규제 완화와 금융지원으로 민간 활력을 끌어내려 하지만, 정부는 공공 주도의 신규 공급을 통해 전월세 안정을 꾀한다.
그럼에도 양측은 갈등설을 일축하며 협력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대화를 통해 충분히 조정 가능하다"고 밝혔고, 서울시 역시 "충돌하는 사안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실제로 서울시가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도심 공공복합사업도 서울시 협조 없이는 현실성이 낮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 협력이 불가피하다.
시장은 양측의 행보를 ‘공급 다변화’라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한다. 공공 주도의 속도전과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이 나란히 추진될 경우 공급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 신뢰 회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용적률·규제 완화·조합 인센티브 등 세부 조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다른 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관건은 충돌을 넘어 공존할 수 있느냐다. 정부와 서울시가 각기 다른 해법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 균형점을 찾아낸다면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반대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혼선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급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공공과 민간의 공존 실험이 한국 주택시장의 신뢰 회복을 가르는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과 민간의 노선 차이는 분명하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공급 병목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속도를, 서울시가 자율성을 보완하는 구조로 조율된다면 시장 안정과 공급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