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현대건설, 삼성물산]](https://cdn.ebn.co.kr/news/photo/202511/1685116_702994_5757.png)
국내 정비사업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인 30조원 시대에 진입했지만, 성장의 무게추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빅2’에 쏠리고 있다. 두 회사가 전체 수주액의 40%를 차지하며 시장을 사실상 양분한 반면, 중견 건설사들은 자금력과 안전 리스크 부담 속에 잇따라 밀려나고 있다. 고금리와 PF 경색 등 복합 악재 속에서 조합들이 ‘가격보다 안정성’을 택하면서 대형사 중심의 구조가 고착되고, 정비사업 시장은 호황의 정점에서 균형을 잃은 채 재편되고 있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은 3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27조8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두 회사에 집중되며 시장의 절반이 '빅2' 손에 들어갔다.
현대건설은 이달 29일 서울 성북구 장위15구역 재개발 사업(공사비 약 1조4663억원) 수주가 유력하다. 해당 사업이 확정되면 올해 누적 수주액은 10조1541억원으로 늘어나며, 2022년 자체 최고 기록인 9조3395억원을 단숨에 넘어선다. 업계 최초로 '정비사업 10조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삼성물산 역시 여의도 대교아파트(7500억원), 은평 증산4구역(1조9435억원) 등 대형 사업을 노리며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두 곳 모두 확보할 경우 삼성물산 역시 10조원 고지를 밟게 돼, 정비사업 시장은 완전한 '양강 체제'로 굳어질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실적 경쟁이 아니라 시장 체질의 변화를 보여준다. 고금리와 PF(프로젝트파이낸싱) 경색으로 조합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되자, "가격보다 신뢰"가 입찰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압구정·성수·여의도 등 주요 정비사업지에서 브랜드 가치와 재무 안정성을 갖춘 대형사가 잇따라 선택되며 "브랜드가 곧 안전"이라는 공식이 공고해지고 있다.
반면 중견사들은 연이은 악재에 밀려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환경 신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세종~안성 고속도로 사고 이후 사실상 정비사업에서 철수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상반기까지 5조원 규모의 수주를 따냈지만 잇따른 중대재해사고로 현장 운영이 중단되며 실적이 정체됐다. 중견 건설사들 사이에선 시장 경쟁이 '확장'이 아닌 '생존'의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정비사업의 '빅2 독주'가 장기적으로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합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 공사비 상승 압박이 커지고, 시공사 간 경쟁이 약화되면 사업 추진 속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대형사 쏠림은 단기적으로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업비 인상과 일정 지연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정비사업 수주전은 '한강벨트'로 불리는 압구정·성수·여의도 일대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참여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에도 브랜드 가치와 자금력을 앞세운 대형사 간의 경쟁이 다시 한 번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한강벨트는 상징성과 사업성이 모두 높은 지역이라 이번 수주전이 단순한 사업 확보 경쟁을 넘어 향후 정비사업 시장의 주도권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이번에도 결국 브랜드 신뢰도와 자금력이 결합된 대형사가 조합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