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남자가 일본 도쿄의 암호화폐 거래소 광고 옆에 서 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 3월 남자가 일본 도쿄의 암호화폐 거래소 광고 옆에 서 있다. [출처=연합뉴스]

올해 내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크립토 트레저리(crypto-treasury)' 전략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디지털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암호화폐를 대규모로 보유한 상장사들의 주가가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해당 전략은 기업이 자사 주식이나 차입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암호화폐 매입에 쏟아붓는 방식이다.

이 흐름은 2020년 마이클 세일러가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를 비트코인 보유 전문회사 '스트래티지(Strategy)'로 전환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급락하자 스트래티지의 주가도 폭락했다. 7월 1280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현재 700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번 조정은 피터 틸(Peter Thiel) 등 유명 벤처투자자들이 지원한 '크립토 트레저리' 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 틸이 투자한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BitMine Immersion Technologies)는 최근 한 달 새 주가가 30% 이상 급락했다.

톰 리(Tom Lee)가 이끄는 또 다른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 ETHZilla(ETHZ) 역시 같은 기간 23% 하락했다.

연초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암호화폐 정책 덕분에 시장은 강세를 보였으나 10월 10일 중국에 대한 돌발 관세 발표로 급락세가 시작됐다.

이후 정부 셧다운 장기화와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됐다.

비트코인 가격은 한 달간 15% 하락했고, 스트래티지는 26%, 매튜 터틀의 레버리지 ETF ‘MSTU’는 50% 가까이 떨어졌다.

투자운용사 터틀 캐피털의 매튜 터틀은 "디지털 자산 트레저리 기업은 기본적으로 레버리지를 씌운 암호화폐 자산"이라며 "상승 시 수익이 빠르지만 하락 때는 더 큰 손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세일러는 "비트코인은 세일 중"이라며 여전히 강세론을 고수했다.

공매도 투자자 짐 채노스(Jim Chanos)는 "투자자들이 직접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데, 굳이 프리미엄이 붙은 기업 주식을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스트래티지를 공매도하고 비트코인을 매수해왔다.

그는 최근 "과대평가 논리가 대부분 실현됐다"며 해당 포지션을 청산했다.

일부 기업은 여전히 현금을 충분히 보유해 저가 매수나 인수 기회를 노릴 수 있지만, 손실이 누적된 기업은 새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 추가 매입이 막히는 상황이다.

이는 시장의 매도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트라이브(Strive) CEO 맷 콜은 "많은 기업이 자금 조달 여력이 없어 발이 묶였다"며 "우리는 부채 대신 우선주 발행으로 자금을 확보해 변동성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시애틀에 사는 29세 개인투자자 콜 그린드는 비트마인 주식을 주당 45달러에 매입해 약 1만 달러 손실을 보고 있지만, 여전히 추가 매수 중이다.

그는 "톰 리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이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었다"며 장기적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기업을 통한 간접 암호화폐 투자' 모델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고 분석한다. ETF 등 직접 투자수단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고평가된 '트레저리 기업' 모델은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암호화폐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관심은 '비트코인 그 자체'보다 '누가 더 싸게 살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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