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한상공회의소]
[출처=대한상공회의소]

최근 국회에서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상장사 상당수가 "경영활동 제약 우려"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2일 발표한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관련 기업 의견조사'에 따르면 자기주식을 10% 이상 보유한 상장사 104곳 중 62.5%가 개정안에 반대했다. '중립'은 22.8%, '찬성'은 14.7%에 그쳤다.

기업들은 소각 의무화의 주요 문제점으로 △사업재편 등 경영전략상 자기주식 활용 불가(29.8%) △경영권 방어 약화(27.4%) △주가부양 효과 약화(15.9%) △외국 대비 불리한 경영환경(12.0%) 등을 꼽았다.

특히 자기주식 소각이 의무화될 경우 자사주 취득 유인이 크게 줄 것으로 분석됐다. 응답기업 중 60.6%가 "향후 자기주식 취득 계획이 없다"고 답했으며 "취득 검토 중"은 25.0%, "취득 계획이 있다"는 14.4%에 그쳤다.

취득 계획이 있거나 검토 중인 기업(39.4%) 중에서도 절반 이상(56.2%)이 "취득 규모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계획대로 추진"은 36.5%, "취득 확대"는 7.3%에 불과했다. 이로써 응답기업 80% 이상이 "자사주 취득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겠다”고 답한 셈이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
[출처=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의는 소각 의무화가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주식 취득 후 단기(1~5일) 주가수익률은 시장 대비 1~3.8%p 높고, 장기(6개월~1년) 수익률도 시장 대비 최대 47.9%p까지 상승했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소각에 따른 단기 주가상승에 집착할 경우 반복적 자사주 취득을 통한 장기적 주가 안정 효과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개정안은 향후 취득분뿐 아니라 기존 보유 자기주식에도 일정 기간 내 소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응답기업의 67.6%는 "기존 보유분 소각에도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중 20.3%는 "소각 대신 처분 의무만 부과하자"고 제안했으며, 23.0%는 "배당가능이익 내 취득분만 소각하고 합병 등 특정목적 취득분은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기존 보유분도 전면 소각해야 한다"는 의견은 9.4%에 불과했다.

응답기업의 79.8%는 "소각 의무화 대신 신규 취득 자기주식의 처분 절차를 공정화하자"는 데 동의했다. 현재 신주발행 시 제3자 배정은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개선 등 경영상 필요가 인정될 때만 가능하다. 이에 준해 자기주식 처분도 제3자에 대한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최승재 세종대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로 인해 제3자에 대한 자의적 처분은 이미 제한돼 있다"며 "소각보다는 처분 공정화에 중점을 두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 대부분은 자기주식 보유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자기주식 보유비율이 자본금의 10%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만 3년 내 처분 또는 소각하도록 규정한다. 미국·영국·일본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중 64.4%(58개사)가 자기주식을 보유 중이며, 평균 보유 비중은 미국 24.54%, 일본 5.43%, 영국 4.93%로 한국(2.95%)보다 월등히 높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소각 의무화는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의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소각보다는 처분 공정화만으로도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