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산업 이면에서 제조사에만 의존한 채 장기적인 전략 없이 뛰어든 브랜드들이 속속 폐업하면서 K뷰티의 명암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출처=EBN AI 그래픽 DB]
국내 화장품 산업 이면에서 제조사에만 의존한 채 장기적인 전략 없이 뛰어든 브랜드들이 속속 폐업하면서 K뷰티의 명암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출처=EBN AI 그래픽 DB]

국내 화장품 산업이 거대 기업 중심에서 수많은 인디 브랜드들이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로 재편되며,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제조사에만 의존한 채 장기적인 전략 없이 뛰어든 브랜드들이 속속 폐업하면서 K뷰티의 어두운 민낯도 드러나고 있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양분하던 국내 화장품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판도가 급변했다. 조선미녀, 스킨1004, 마녀공장 등 일부 브랜드가 대기업 산하 브랜드만큼 인지도를 올리고 일부는 상장까지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쿠팡, 뷰티컬리, SSG닷컴, 무신사, 에이블리, 다이소 등 유통 플랫폼들이 뷰티 사업을 대폭 확장하면서 화장품 유통 경로가 다양화됐고, 소규모 브랜드라도 제품력만 있다면 대기업 못지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덕이었다.

시장 성장의 또 다른 동력은 제조사들의 OBM 사업 확대다. OBM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나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을 넘어서 브랜드 기획과 마케팅까지 함께 수행하는 방식으로,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 업계 대형사들이 이 영역에 속속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소자본 창업자들도 브랜딩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제조사의 지원 아래 제품 출시가 가능해졌고, 이러한 흐름이 곧 인디 브랜드의 대거 진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 사례의 이면에는 폐업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인디 브랜드의 일부 성공사례만 보고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장에 우후죽순 뛰어들었다가 금세 사업을 접는 사례도 그만큼 비례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만 봐도 화장품 책임판매업체의 폐업 수는 2021년 251개에서 2022년 1197개, 2023년에는 1393개로 급증했다. 업계는 지난해 연간 폐업 건수가 전국적으로 훨씬 더 늘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단순히 업계 규모가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유통 전략과 시장 분석 없이 성급히 제품을 출시한 브랜드들이 현실적인 매출 확보에 실패하며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제조사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다. 많은 인디 브랜드들이 제조사의 제품 제안과 초기 마케팅 지원만 믿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판매가 부진할 경우 제조사들은 책임에서 발을 빼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제품에 부착된 ‘프리미엄 인증 마크’나 성분 마케팅도 빛을 발하지 못하면 ‘별 의미 없는 요소’로 치부되며, 브랜드는 모든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소자본 창업’이라는 환상도 화장품 업계 내 인디 브랜드들의 그늘을 넓히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과 플랫폼 입점이 쉬워졌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철저한 기획력과 유통 전략, 고객 분석, 자금 운용이 뒷받침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조사가 맡을 수 없는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성’은 결국 브랜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전문가는 “일단 창업자들이 인디 브랜드 시장의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해야 하긴 하지만 OBM에 참여하는 제조사들도 파트너 브랜드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고객사를 늘리고 제품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유통 및 마케팅 조언을 제공하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 분담에도 일정 부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규제 정비도 필요하다. 단순히 책임판매업체 등록을 통해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방식이 아닌, 브랜드의 사업계획서 제출과 인증 수준 상향 등을 통해 ‘묻지마 창업’을 일정 부분 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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