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클라렌던 포도밭을 인수해 다시 포도재배를 위 한환경을 만들었다. [출처=베커스 와이너리]](https://cdn.ebn.co.kr/news/photo/202505/1663117_677475_4632.jpeg)
호주 남부의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성'을 품은 레드 와인의 성지로 통한다. 그 중심에서 돋보이는 한 병의 와인, 바로 베커스 시라 그르나슈(Bekkers Syrah Grenache)다.
절제된 양조와 깊이 있는 풍미 그리고 프랑스식 정제미가 공존하는 이 와인은 그 자체로 '호주의 그랑크뤼'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 와인은 호주의 대표적인 포도 재배 전문가 토비 베커스(Toby Bekkers)와 프랑스 출신 와인메이커 엠마누엘 베커스(Emmanuelle Bekkers) 부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토비는 20년 넘게 맥라렌 베일의 떼루아와 포도 생육 환경을 이해하며 호주에서 바이오 다이내믹 재배를 선도해 온 인물이다.
그는 기후와 토양의 특성을 반영한 정밀한 재배 방식을 통해 건강한 생태를 유지하고 포도의 순수한 힘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엠마누엘은 프랑스 론 지역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여러 와이너리에서 고전적인 프랑스 양조 기술을 익혔다.
그는 개입을 최소화해 포도 자체의 개성과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는 절제된 양조 스타일을 추구하며 오크 역시 은은한 뒷받침 역할에 머무르게 한다. 그 결과 와인은 무게감보다는 투명함과 긴 여운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두 사람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든다"는 철학을 공유하며 밭의 선택부터 병입까지 모든 단계를 함께 설계한다. 특히 이들이 주목한 땅은 바로 클라렌던(Clarendon) 지역이었다.
이곳은 19세기 중반 호주 대륙에서 가장 먼저 포도재배가 시작된 역사적인 땅이자 한때 명성을 누렸지만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잊혀 가던 밭이었다. 토비와 엠마누엘은 이 유서 깊은 빈야드를 다시 일구며 생태계와 토양을 복원했고, 지금의 베커스 와이너리는 바로 이 과정을 통해 태어났다.
![토비와 엠마뉴엘. [출처=베커스 와이너리]](https://cdn.ebn.co.kr/news/photo/202505/1663117_677476_470.jpg)
유럽의 감성과 호주의 자연이 조화롭게 만나는 베커스 와인의 양조 방식은 단순한 국제 협업을 넘어 각 대륙의 장점을 유기적으로 융합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베커스 와이너리는 2020년 와인 평가 매체 더 리얼 리뷰(The Real Review, 호주와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와인 전문 평론지)로부터 '호주 최고의 와이너리 Top Wineries of Australia'에 선정되며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베커스 시라 그르나슈는 맥라렌 베일 내에서도 클라렌던(Clarendon), 시뷰(Seaview), 온카파링가 힐즈(Onkaparinga Hills), 블루잇 스프링스(Blewitt Springs) 등 네 곳의 프리미엄 빈야드에서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해 만들어진다.
클라렌던은 고도가 높고 점토가 섞인 사암 토양이 특징으로 시라에 뛰어난 구조감을 부여한다. 시뷰는 해양 바람의 영향을 받는 언덕 지대의 포도밭으로 그르나슈에 생동감과 우아한 향을 더한다.
온카파링가 힐즈는 철분이 풍부한 붉은 토양과 경사진 지형이 복합적인 탄닌과 집중력 있는 과실 풍미를 이끌어내며 블루잇 스프링스는 모래 기반 토양에서 자란 그르나슈가 섬세하고 향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어낸다.
이들 밭의 포도 일부는 줄기째 통째로 발효하는 방식인 전송계 발효(Whole Bunch Fermentation)를 통해 양조되며, 이를 통해 와인은 더욱 풍부한 향과 입체적인 구조감, 그리고 섬세한 탄닌을 갖게 된다.
![베커스 시라 그르나슈. [출처=베커스 와이너리]](https://cdn.ebn.co.kr/news/photo/202505/1663117_677477_4734.png)
맥라렌 베일은 호주 남호주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다. 지중해성 기후와 해양성 영향이 결합된 이 지역은 여름이 덥고 건조하면서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포도의 성숙 속도를 조절해 준다.
이 지역에는 석회암, 사암, 점토, 모래 등 40여 종의 토양이 혼재돼 있으며 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그르나슈와 시라는 이 지역에서 특히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며 밝은 과일향과 부드러운 탄닌, 균형 잡힌 산도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커스 와인은 이 지역의 잠재력을 정교하게 끌어낸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와인은 시라 64퍼센트, 그르나슈 36퍼센트 비율로 구성된다. 블랙체리와 블루베리, 라즈베리의 풍부한 과실 향에 화이트 페퍼와 정향, 타임의 힌트가 어우러진다.
미디엄 풀바디의 질감으로 실키한 탄닌과 절묘한 산도의 조화가 돋보이며 17개월간 프렌치 오크 숙성을 통해 여운이 깊다. 10년 이상의 숙성 잠재력을 지닌 이 와인은 지금 마셔도 좋지만 셀러에서 시간을 두면 더욱 깊은 복합미를 발현한다.
베커스 시라 그르나슈는 단순한 블렌딩 와인을 넘어 한 와이너리의 철학과 지역성 그리고 정밀한 양조 기술이 응축된 하나의 작품이다. 단 한 병으로 맥라렌 베일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와인이야말로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