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생성 이미지.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72440_688411_4335.png)
상법 개정으로 건설업계가 경영, 자금 전략, 의사결정 체계 전반의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3% 룰) 등 주요 조항들이 장기 프로젝트 중심의 건설업 특성과 충돌하면서 실무 위축·재무 유연성 저하·지배구조 리스크 등 복합적인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 전체'로 확대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도록 했다. 여기에 독립이사 비율 확대와 전자주총 도입 의무화까지 포함되면서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개정안 가운데 건설사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바로 충실의무 확대다. 그동안 '회사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했던 경영 행위가 앞으로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이사 개인의 법적 책임 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문제는 건설업이 단기 수익을 내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 아파트만 하더라도 착공부터 분양, 입주까지 평균 3년 이상 소요되며, 중간에는 마진이 낮거나 손실이 발생하는 구간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이를 장기 투자 과정의 일부로 해석했지만, 이제는 손실 구간이 곧 주주이익 훼손으로 비춰질 수 있어 이사의 경영 판단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무 차원에서도 불안이 커지고 있다. 건설업 특성상 책임준공 의무는 시공사가 지지만, 입주민 민원이나 발주처와의 갈등 등으로 공정이 지연되면 이사 책임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외부 변수가 많은 산업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법 적용은 경영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중동, 동남아 등 고위험 지역 중심의 고수익 사업은 대주주 중심의 전략적 결단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정안 적용 이후에는 이사회 판단이 보수적으로 흐르면서, 수익성이 높은 해외 사업조차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상장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수익률이 낮은 구조에서 결과만 놓고 주주가 책임을 묻는다면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렵다"며 "결국 실적 위주 판단만 남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금 전략 측면에서도 파장은 크다. 주주이익 보호 요구가 높아질수록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요구가 커지고, 이는 유보이익 축소로 이어진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존하는 건설업 구조상, 유보자금이 줄어들면 재무 안정성 악화로 연결된다. 신용등급 하락, 조달금리 상승, 보증한도 축소 등 연쇄적 부담이 불가피하다.
의사결정 체계 역시 영향을 받는다. 이사회 내 독립이사 비율 확대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요건 강화는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수일 내 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민간 복합개발 수주전 등에서는 이사회 절차 지연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현장 중심 판단보다 형식적 통제 구조가 앞서는 ‘절차 경영’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배구조 차원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3% 룰 도입으로 특수관계인을 통한 의결권 연대가 제한되면서 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구성 과정에서 대주주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감사위원 선임안에 대해 15% 이상 반대표가 나온 대우건설 사례는 이를 예고한 장면이다. 당시에는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전면 행사 가능해 통과됐지만, 개정법이 시행되면 같은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다.
소규모 상장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시가총액이 낮고 외부주주 비중이 높은 지방 건설사의 경우, 악의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권한은 강화된 반면, 대주주의 방어 수단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업계는 이번 상법 개정이 단순한 지배구조 정비를 넘어 건설사의 사업 운영 모델과 리스크 관리 체계 전반을 바꾸는 제도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도 시행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졌지만, 실질적인 대응을 마련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한 상장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와 경영 지속성 간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산업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사진에 대한 충실의무만 강조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가능케 할 법적·제도적 장치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