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EBN 권영석 기자]
[출처=EBN 권영석 기자]

"실적이 협상의 힘을 좌우한다."

지난해 말 독일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은 중국 등 주요 시장의 판매 부진과 자동차 수요 위축으로 실적이 악화되자, 자국 내 9개 공장에서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사측은 노조와 합의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보너스 지급을 중단하고, 2030년까지 독일 내 생산을 절반으로 줄이는 동시에 전체 인력의 약 30%에 해당하는 3만5000명을 감축키로 결정했다.

반면,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인공지능(AI) 열풍을 등에 업고 지난 7월 전 직원에게 지난해 실적에 대한 연간 성과급을 지급했다. 무려 약 6조6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성과급은 곧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임을 입증했다.

노조는 '호실적'이라는 카드가 있어야 요구를 밀어붙일 수 있고, 사측은 충분한 이익을 내야만 지갑을 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가 4개월 만에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임금 6% 인상과 영업이익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95% 이상 찬성을 얻었다. 초과이익분배금 상한을 없애고 장기적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은 전 산업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노조는 실적이라는 카드를 요구 정당성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했고, 사측은 넉넉한 이윤을 냈기에 이를 수용할 수 있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호조로 인해 영업이익 23조4673억원, 순이익 19조 7969억원(순이익률 30%)을 올리며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처음 영업익 기준 1위를 달성했다. 업계 안팎에서 내놓는 올해 전망치도 37조원에 육박할 만큼 압도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해부터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어주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시스템LSI는 적자의 늪 속에서 주춤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조도 지난해 첫 총파업을 단행하며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반 OPI 개선을 요구한 바 있지만, 사측은 이를 받아들일 만한 재정적·경영적 여력이 부족했다. 

실적 악화로 사측은 성과급과 임금 인상 포용력이 제한되고, 추가 비용 부담도 버거웠다. 실적 성장 명분이 사라진 노조의 요구는 설득력이 약해졌으며, 성과 연동 인센티브 주장은 자연스레 '무리수'가 됐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그룹 핵심 계열사 노조도 잇달아 성과급 기준을 EVA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바꾸는 성과급 제도 개편을 공통으로 요구하고 있다.

협상의 핵심은 명확하다.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들면 노조가 자신 있게 요구를 제시할 수 있고, 사측도 조율을 통해 수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실적이 부진하면 분배보다는 경영 안정과 위기 극복이란 현실적 과제 앞에 노조의 요구는 힘을 잃고 협상은 틀어지기 마련이다.

삼성전자 DS부문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에 그친 현실에서 노조가 SK하이닉스 수준의 요구를 관철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기업의 이익은 노사 협상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키(Key)다. SK하이닉스 사례가 보여주듯, 호실적이라는 카드를 쥐어야만 요구와 분배 논의는 비로소 힘을 얻게된다. 임단협이라는 저울 위에는 언제나 실적이 놓인다. 따라서 이익이 무겁게 실릴 때, 분배의 균형추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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