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KDB산업은행]
[출처= KDB산업은행]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강력한 희망이다."

지난 2020년 11월. 세간의 시선은 이동걸 전 한국산업은행 회장에 쏠렸다. 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는 빅딜을 결단하면서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철회가 있은지 2개월 만이었다. 표류가 예상됐던 매각 작업의 불씨도 되살아났다.

이동걸 산은 회장의 의지는 강했다. 경쟁 방식에서 벗어나 대형 항공사를 합쳐야 국내 항공산업을 지키고 국가 경제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1년이 지난 후 결합 심사가 지연되자 공정거래위원회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교각살우라는 사자성어를 꺼낸 것도 이 시기다. 정부 산하기관인 산은이 다른 부처의 업무와 관련해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이 전 회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조치”라며 "조선업과 항공업 합병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탐내겠다는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후 산은은 2024년 1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지분 63.88% 인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금 지원 등을 통해 통합 과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대한항공의 행보는 이런 기대감과 정반대 모습으로 향하고 있다. 가장 우려됐던 대한항공의 독과점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소비자들과 업계에서는 '메가 캐리어' 도약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소비자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번복한 프리미엄석 도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 사이 등급인 '프리미엄' 좌석 도입을 위해 이코노미 좌석을 3-4-3 배열로 변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발표로 '밀집 좌석'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진데 이어 정치권까지 나서자 대한항공은 계획을 백지화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통합 과정에서 8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됐음에도 소비자 후생은 후퇴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은은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0억원을 투입했고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해 총 8000억원을 지원했는데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투자합의서에는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명 선임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및 동의권 준수 △대한항공 경영평가 실시 및 감독 책임 등 7가지 준수 사항이 담겼다. 여기에 경영평가를 통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 의무도 부여했다.

때문에 산은의 역할론이 대두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산은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로 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의 몸집이 더욱 커진 만큼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제대로 검수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정치권에서는 산은의 역할론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3·4·3 배열로 개조한 항공기를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40여개 노선에 투입한다면 시정조치 위반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점검해 달라"고 강조했다. 

박범계 의원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했는데, 행정법상 부관(행정행위에 조건·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에 해당한다"며 "부관이 행정법적 조건인데 이 조건이 달성되지 않으면 기업결합 승인은 무효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주 후보자는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주 후보자는 지난 3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위원장으로 취임하면 좌석 축소 문제뿐만 아니라 소비자 후생 감소 우려가 제기되는 여러 이슈에 대해 다각도로 살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통합 절차가 합리적이었는지 의문이 지속 제기되고 있는 점도 산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상 부실 기업 매각은 채권단이 대출 상환 기일 연기·대출 동결·출자 전환 등의 워크아웃을 통하거나 파산신청 두 가지를 통해 진행한다. 하지만 산은은 이같은 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한항공과의 시너지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조원태 회장 일가의 이익을 위한 재벌기업들의 카르텔 형성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GS그룹, 효성, 동국제강, SK그룹 등 다수 대기업이 '한진칼' 지분을 장기 보유하고 있는데, 경영 성과나 투자 수익과는 무관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으로 자본주의의 근본 원칙인 시장의 공정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각 기업은 투자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면서 실질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국내 대기업들이 개인적인 관계로 다른 재벌가를 도와주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관계 상충 및 충실 의무 위반 등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출처=한진그룹]
[출처=한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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