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품학회가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정한 유통 생태계를 위한 플랫폼 정책 방향’ 정책 포럼를 개최했다.이성희 호성대 교수(왼쪽부터), 김태완 건국대 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한상린 한양대 교수,  이유석 동국대 교수,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이 종합토론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한국상품학회가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정한 유통 생태계를 위한 플랫폼 정책 방향’ 정책 포럼를 개최했다.이성희 호성대 교수(왼쪽부터), 김태완 건국대 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한상린 한양대 교수,  이유석 동국대 교수,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이 종합토론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국회에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도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들은 “수수료 상한제가 선한 의도와 달리 되레 소상공인·소비자·플랫폼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국회가 제도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상품학회가 주최하고 네모미래연구소가 주관한 ‘공정한 유통 생태계를 위한 플랫폼 정책 방향’ 정책 포럼이 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회관에서 열렸다. 

첫 발제를 맡은 김태완 건국대 교수는 해외 학술연구와 시뮬레이션 사례를 소개하면서 수수료 상한제가 구조적으로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독립 식당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 같지만, 플랫폼은 잃은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소비자 요금을 인상하거나 프로모션을 축소하게 된다”며 “이 경우 오히려 프랜차이즈 체인점은 광고·노출 측면에서 유리하고 독립 식당은 더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수수료 ‘캡(cap)’을 씌우는 것보다 플랫폼 알고리즘의 노출 방식과 인센티브 구조, 소비자 반응까지 고려한 종합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태완 건국대 교수가 ‘수수료 상한제의 득과 실’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김태완 건국대 교수가 ‘수수료 상한제의 득과 실’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이성희 호서대 교수는 최근 학회 설문조사를 근거로 소비자 행동 변화를 짚었다. 조사에 따르면 배달앱을 월평균 5회 이상 이용하던 응답자들은 수수료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배달 횟수를 2회 수준으로 절반 이상 줄이겠다고 답했다. 대신 52%는 “집밥이나 간편식 소비로 전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는 이미 구독형 무료배달 서비스에 익숙해졌다”면서 “상한제 이후 배달료 전가가 이뤄지면 주문 감소와 불만 확산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약품·주택·에너지 분야의 가격 상한제 사례를 언급하면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급 축소·서비스 질 저하 같은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 과거 유통 규제 사례를 언급하면서 “당시에도 소비자 편익이 오히려 줄었다”면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제도를 밀어붙이기 전에 세종시 같은 특정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거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유석 동국대 교수는 “플랫폼의 수익성을 억제하면 그 손실은 결국 배달료 인상이나 노출 축소라는 형태로 만회된다”며 “배달앱은 오프라인 실물 서비스가 수반되는 온오프라인 연계(O2O) 산업이라는 점에서 구글·앱스토어처럼 박리다매 구조로 수익성을 만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유성 호서대 교수가 ‘선한 의도, 예상치 못한 혼란 : 수수료 상한제의 역설’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이유성 호서대 교수가 ‘선한 의도, 예상치 못한 혼란 : 수수료 상한제의 역설’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출처=신승훈 기자]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은 배달앱 산업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 배달앱 수수료는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데, 추가 규제가 가해지면 2·3위 업체는 적자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곧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고, 벤처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배달앱은 소비자, 식당, 라이더가 동시에 연결된 다면 시장”이라며 “한쪽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전체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완 건국대 교수는 “수수료 상한제는 ‘풍선효과’로 어디에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며 강제 규제 대신 인센티브 기반의 ‘넛지(부드러운 개입) 정책’을 제안했다. 예컨대 배달료와 음식값을 분리 고지하는 현행 방식을 개선해 소비자가 한 번에 총액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희 호서대 교수는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뮬레이션과 영향평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법제화한다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소비자·소상공인·플랫폼 모두의 관점에서 균형 잡힌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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