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5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출처=연합뉴스]
국제유가가 5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출처=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원유 공급 과잉과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맞물리면서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휘발유 가격 하락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생산자들은 이익 축소와 감산 압박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17일(현지시간) 배럴당 56.99달러에 마감했다. 전날보다 2.2% 떨어졌고 1년 전보다 19% 낮은 수준으로 2021년 2월 이후 최저가다. 국제 기준 유종인 브렌트유도 1.4% 하락한 61.06달러로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저장 원유량은 9월 하루 평균 340만 배럴 증가해 팬데믹 시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중동부터 미국 텍사스 미들랜드까지 주요 산유국들이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확대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7월 미국 원유 생산량이 하루 1360만 배럴을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정부 셧다운 속에서도 발간된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수준이 최근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그 동맹국들은 지난해 감산 정책을 단계적으로 철회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은 이달과 다음 달 각각 하루 13만7000배럴씩 생산량을 늘릴 계획으로 이는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진 조치다. OPEC은 내년 수요 증가를 근거로 시장 균형을 예상하고 있다.

미국 석유업계는 생산 감축 대신 효율성 개선과 대형 유정 운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일서비스기업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원유 시추 리그 수는 1년 전보다 63개 줄었지만 생산량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분석업체 이스트데일리 애널리틱스는 올해 말 미국 원유 생산량이 여전히 하루 1360만 배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크리스 누난 수석 애널리스트는 "석유와 함께 생산되는 천연가스·프로판 등의 공급 계약이 있어 쉽게 생산을 줄일 수 없다"며 "시추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향후 가격 반등기에 시장 점유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올해 초과 공급이 중국의 대규모 원유 비축에 의해 일부 가려졌다고 지적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중국 세관 자료를 인용해 9월 중국 원유 수입이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로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는 두 나라 모두의 석유 수요를 위축시켜 유가 회복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가 하락은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7일 기준 미국 내 일반 휘발유 평균 소매가격은 갤런당 3.057달러로 1년 전보다 15센트 낮았다. 미시간, 오하이오, 텍사스, 콜로라도 등 여러 주에서는 이미 평균 가격이 갤런당 3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EIA는 내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2.9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코로나19 이후 최저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에너지 시장의 초과 공급과 경기 둔화가 맞물린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석연료 중심 정책과 무역정책이 동시에 유가에 영향을 미친 가운데 전문가들은 당분간 공급 과잉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OPEC과 미국이 모두 증산 기조를 유지하는 한, 단기적으로 유가가 반등하기는 어렵다"며 "세계 경제 성장세가 회복되지 않으면 유가는 당분간 60달러선 아래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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