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픈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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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장기화와 함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증폭되면서 국내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회사채 시장이 극심한 경색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건설업종이 자금 시장 불신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BBB등급 회사채 금리가 7%를 돌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PF 관련 잠재 채무(익스포저)에 대한 공포로 건설채를 위험자산으로 일괄 간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용등급 하위권 중견 건설사들이 자금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하는 위기에 놓였다. 단순히 자금 조달의 '가격'이 높아지는 것을 넘어, '조달 가능성' 자체가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3일 NICE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BBB등급 3년물 회사채의 평균 금리는 국고채 3년물 대비 450~520bp라는 기록적인 신용 스프레드(가산 금리)를 형성했다. 이는 과거보다 약 1%포인트 이상 폭증한 수치다. BBB급의 대표적 건설사인 HL D&I 한라(옛 한라건설)의 채권 수익률은 무려 7.69%까지 치솟으며, 7%대 금리가 더 이상 이례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건설, 석유화학 등 업황 부진 업종에서 스프레드가 과도하게 확대됐다"며, 특히 건설업의 금리 폭등 배경에는 실질적인 위험을 넘어서는 심리적 위험 프리미엄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설업은 그 특유의 자금 조달 구조상 금리 변동에 가장 민감한 업종이다. 부동산 경기 둔화와 미분양 누적, 그리고 PF 보증 채무라는 '삼중고 리스크'가 겹치면서 중견 시공사들의 현금흐름은 급격히 약화됐다. PF 보증 부담을 안은 기업들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차환할 여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일부는 사모채나 유동화증권(ABS) 발행 등 비정기적인 수단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BBB+ 이하로 등급이 떨어지는 순간 기관투자자의 내부 규정상 투자제한 대상이 되면서, 공모채 시장 접근 자체가 봉쇄된다.

시장은 이미 건설채를 '투자가 불가능한' 위험자산으로 낙인찍은 상태다. 한 시공사 재무담당자는 "금리가 7%를 넘으면 사실상 자금 조달을 포기하는 분위기"라며 "이제는 금리 수준이 아니라 발행 자체가 가능한지가 문제"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수요예측 단계에서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전무하거나, 금리가 높은 상단에만 몰려 발행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금리 급등에도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오직 PF 익스포저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의 불신은 다시 건설채 스프레드 확대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는 '불신의 악순환'을 낳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하이일드 시장 내 건설채 비중은 1년 새 15% 이상 증가했음에도 기관투자자 참여는 20% 가까이 급감하며 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이 구조적 악순환이 건설·플랜트 등 실물산업 기반 업종의 자금 흐름을 위축시키고, 결국 고용과 투자에도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신용평가 시스템의 왜곡이다. PF 부실을 이유로 건설사의 신용도를 단순한 재무비율이 아닌 업종 전체의 등급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시장은 실제 위험보다 건설업을 과도하게 평가절하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BBB등급권 기업채의 신용스프레드는 실질 위험보다 불신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일부 업종은 실질 리스크보다 심리가 금리를 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상적인 영업을 유지하고 있는 BBB급 기업들마저 단순 등급 기준에 따라 투자부적격으로 분류돼 자금 조달이 막히는 현실은 신용평가의 기능이 '위험 구분'이 아닌 '시장 진입 제한'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투자업계는 중견 건설사들의 시장 복귀를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을 통한 보증제도 확대, BBB급 회사채 전용 펀드 조성, 그리고 차등 신용평가제 도입 등이 대표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들은 발행 의지가 있어도 정책적 보증 장치가 병행되지 않으면 금리 부담을 완화하고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NICE신용평가는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 신용평가의 본래 목적을 신뢰해야 하며, 시장의 신뢰 회복과 제도적 보완이 병행될 때 비로소 하이일드 시장이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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