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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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리겠다고 했지, 짓겠다고는 안 했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 시장에선 '공급의 역설'로 비쳐지고 있다. LH를 앞세워 수도권에 135만호(연 27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대출·거래 규제 강화로 수요가 위축되고 안전규제 강화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실제 공급 여건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공공은 팔을 걷었지만 민간은 규제로 손발이 묶였고, 수도권 핵심지는 여전히 공급난에 시달리는 반면 지방은 미분양이 늘고 있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과 비용 부담이 겹친 건설사들의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정부의 '공급 확대' 구호가 현실에서는 시장 위축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급 의지 vs 억제 정책, 정면 충돌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놨다. 6·27 대출규제, 9·7 공급대책, 10·15 안정화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며 향후 5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13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LH가 직접 시행자로 나서고 민간 참여형 공공분양도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책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제도'보다 '시장 억제 장치'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정부는 집값 과열을 이유로 수도권 전역을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서울 전역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설정했다. 대출 규제는 한층 강화돼 15억원 초과 주택의 주담대 한도는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으로 제한됐다. 실수요자조차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공급 확대'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정비사업 규제도 병행됐다. 10·15 대책은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이주비 대출 제한 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추진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크다. 실제 공급이 이뤄지는 시점은 정책 발표보다 수년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 핵심지는 각종 인허가 절차에 묶이고, 외곽 지역은 수요가 없어 미분양이 쌓인다"며 "정책이 양쪽 모두를 막아버린 셈"이라고 평가했다. 

공사비 급등·안전규제에 건설사 '수주 포기'

현장에서는 공사비 상승과 안전규제 강화가 또 다른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건설 자재비와 인건비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두 배가량 올랐고,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의 평당 공사비는 1000만원에 근접했다.

여기에 올해 9월 시행된 노동안전 종합대책으로 중대재해 발생 시 과징금과 영업정지 제재가 강화되면서 공기 지연과 비용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안전 확보는 필요하지만 현장의 부담이 폭증하고 있다"며 "결국 수주 포기나 사업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견·중소 건설사는 PF 부실에 더해 자금경색까지 겹치며 연쇄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2025년 들어서만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가 10곳을 넘었다. 금융권은 부동산 익스포저(대출 노출액)를 줄이고 있고, 공공사업은 낮은 수익성 탓에 대형사조차 참여를 꺼리고 있다.

"엔진 밟으면서 브레이크 잡는 꼴"

결국 공급 확대를 내세운 정부의 정책 기조와 규제 강화 중심의 제도 환경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수도권 외곽의 신규 택지는 미분양이 쌓이고, 도심의 정비사업은 각종 인허가와 금융규제에 막혀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방향이 '양적 확대'에서 '실질 공급력 강화'로 전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 외곽 위주의 공공택지 개발은 실수요자 유입이 제한적이고, LH의 직접 시행 체계도 미분양 누적 시 재정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정부는 공급 속도를 강조하지만 현장은 안전·금융·인허가 3중 규제로 묶여 있다"며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건설사들이 삽을 못 들게 막아 놓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정책 구조는 엔진을 밟으면서 동시에 브레이크를 잡는 꼴"이라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인허가 절차 완화, 금융지원 확대, 안전비용의 제도적 반영 같은 현실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135만호 공급은 숫자상의 계획일 뿐, 실제 착공과 준공으로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결국 정책의 신뢰성은 '얼마나 빠르게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짓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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