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에서 발생한 HJ중공업의 보일러 타워 붕괴는 단순한 현장 과실로만 볼 수 없는 사고다. 아파트 하자 통계에서 드러난 품질관리 실패가 산업현장의 안전 부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건설산업의 구조적 안전불감증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작은 하자'가 '큰 참사' 로 번지지 않도록 현장의 숫자와 징후들을 경고의 신호로 읽어내야 할 때다. [편집자주]
![HJ중공업의 보일러 타워 붕괴 현장[출처=연합뉴스]](https://cdn.ebn.co.kr/news/photo/202511/1686026_703998_2744.jpg)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에서 일어난 HJ중공업의 보일러 타워 붕괴는 돌발 사고로 보기 어렵다. HJ중공업은 이미 공동주택 하자 통계에서 최근 하자판정 건수가 가장 많은 건설사로 지목돼 왔다. 숫자로 된 경고가 몇 년째 쌓이는 동안에도 공사 방식과 안전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고, 그 결과 가장 위험한 노후 발전소 해체 현장에서 결국 노동자 사망으로 귀결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루에 벌어진 참사지만, 그 서막은 아파트 단지와 하자 분쟁 통계 속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지적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2시 6분께 울산 남구 용잠동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높이 60m 보일러 타워가 무너지면서 작업자 7명이 매몰되고 이 가운데 최소 3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발주사 HJ중공업의 협력업체 코리아카코(발파 전문업체) 소속 작업자들이 폭파 이전에 구조물이 계획된 방향으로 넘어지도록 하는 취약화 작업을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화력발전소는 1981년 준공된 노후 중유발전소로, 한국동서발전이 2024년 1월 HJ중공업과 총 575억원 규모의 해체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2026년 3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5호기 보일러 타워는 발파 해체 직전 단계였다. 주요 철골을 미리 잘라 어느 쪽으로, 어떤 형태로 무너질지 유도하는 이른바 '사전 취약화' 공정이 진행되던 시점이다. 이처럼 대형 구조물을 한 방향으로 전도되도록 설계하는 것 자체는 해체업계에서 통상적인 공법에 속한다. 쟁점은 설계·해체계획·시뮬레이션·지지 구조 검토 단계에서 미리 설정한 붕괴 방향·시점·낙하 범위가 실제 작업에서 그대로 지켜졌는지, 그리고 그 범위가 위험구역으로 설정돼 있었음에도 왜 작업자들이 그 안에 남아 있었느냐다.
한 구조기술 전문가는 "구조적 안정성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고위험 공정에서 붕괴 방향과 시점을 통제하지 못했다면, 애초 위험을 전제로 한 작업에서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절차가 오히려 위험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HJ중공업은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고 사실을 보고하고 관계기관과 함께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건설 부문 모든 공사 현장의 작업을 중단하고 자체 안전점검과 보완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다른 현장에서 품질·시공 부실 신호가 숫자로 축적된 상황에서 사고 이후에야 꺼낸 '전 현장 점검' 카드가 충분한 책임 있는 대응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HJ중공업은 이번 울산 사고 이전부터 안전·품질 관리에 구조적 균열이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받아온 회사다. 그 경고음은 올 상반기 아파트에서 울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3~8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처리한 공동주택 하자 사건은 3118건으로,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약 4500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하자심사 신청 1만2005건 가운데 67.5%인 8103건이 실제 하자로 판정됐다.
하자 유형을 보면 기능 불량 15.1%, 들뜸·탈락 13.6%, 균열 11.0%, 결로 9.8%, 누수 7.1%, 오염·변색 6.6% 등이다. 마감재가 떨어지고 구조 부위에 균열이 생기며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입주민 생활과 직결된 기초적인 품질 문제가 여전히 상습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통계에서 HJ중공업은 최근 6개월 기준 하자판정 건수 154건으로 최다 건설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아파트 현장에서 드러난 기능 불량, 들뜸·탈락, 균열은 단순한 마감 실수 몇 건이 아니라 설계·시공·감리·검수 전 과정에서 품질과 안전 기준이 무너져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작은 균열과 들뜸조차 줄이지 못한 회사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노후 발전소 구조물의 위험을 얼마나 보수적으로 관리했을지에 대해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는 이번 울산 사고를 예고된 사고로 해석하고 있다. 잦은 아파트 하자와 통계로 드러난 품질 부실에도 불구하고 공사 방식과 안전 관리 체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채 고위험 해체 공정에 그대로 적용된 결과가 노동자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울산 남구 사고에 대한 수사와 감독 과정에서는 단순히 현장 작업자 과실 여부를 따지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위험 공정에 대한 내부 의사결정 과정과 안전 관리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HJ중공업 역시 전 현장 점검 수준에서 멈추지 말고, 아파트에서 발전소까지 이어지는 전 공정의 설계·시공·해체 기준과 안전 투자 계획을 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통계와 사례에서 드러난 위험 신호들이 향후 제도 개선과 현장 관리 강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회사와 감독당국이 함께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