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품산업이 고환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파고 속에 직면했다. 겉으로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을 억제하고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원가 압박이 한계치를 넘어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출처=오픈AI]
한국 식품산업이 고환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파고 속에 직면했다. 겉으로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을 억제하고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원가 압박이 한계치를 넘어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출처=오픈AI]

한국 식품산업이 고환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한복판에 서 있다. 겉으론 가격 인상 억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식품업계 내부에선 이미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정부의 물가 통제와 환율 급등이 맞물리면서 식품기업들은 인상도, 인하도 못 하는 ‘샌드위치 상태’에 빠졌다.

1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은 두 달째 1400원대를 웃돌며 고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식품업계의 주요 원자재인 밀·대두·옥수수 등은 달러 결제 의존도가 높아 환율 상승이 곧 원가 폭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 속에서 기업들이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실질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문제는 환율이 당장보다 지속될 때 폭발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식품업체들은 3~6개월 치 원자재를 비축해 두기 때문에 환율 급등의 여파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즉, 지금은 아직 ‘폭풍 전의 고요’다. 식품업계는 현재의 환율이 내년까지 유지된다면, 봄 이후 식품 가격의 대대적인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환율과 맞물려 국제 곡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미국 중서부의 이상기후로 밀과 옥수수 작황이 줄고, 브라질·아르헨티나산 대두 가격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이로 인해 제분·제면업계는 물론, 라면·과자·햄·소시지 등 가공식품 전반에 비용 상승 압력이 전이되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1200원대일 때 수입한 원자재로 제품을 만들던 시기엔 숨통이 트였지만, 지금은 그때 가격으로 팔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비축 물량이 끝나면 인상 압박이 도미노처럼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쉽게 가격 인상을 결정하지 못한다. 정부는 연말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서민 체감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식품·외식 부문은 ‘직접 통제 대상’에 가깝다.

실제로 주요 프랜차이즈나 대형 식품기업들은 환율 부담에도 불구, 연내 인상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가격 안정의 대가로 장기적 수익 악화를 떠안는 셈이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환율은 단순한 외환시장 이슈가 아니라 ‘식품 산업 생태계’ 자체를 흔드는 변수”라며 “글로벌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구조상 환율이 높을수록 이익률은 급격히 줄어들고, 이는 연구개발(R&D)나 품질개선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식품업계의 고민은 단순히 ‘가격을 올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고환율 속에서 버티는 체력전이자, 물가정책과 기업 생존 사이의 ‘정책 딜레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물가를 지키려 하고, 기업은 브랜드 신뢰를 지키려 하지만 이 상태가 길어지면 결국 어느 쪽도 지킬 수 없게 된다”며 “이제는 가격 인상이 아니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